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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웅재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


 

최근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표절 문제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불만은 이에 대한 공론이 표절 의혹을 받은 사람들 개인에 대한 공격과 책임 추궁의 차원에서 진전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이들의 명백한 과오에 대해 인간적으로 동정해야 한다거나 직업적 윤리와 기율, 또는 원칙의 확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이러한 표절의 문제가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받거나 이로 인해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들은 왜 이러한 위험천만한 가능성 앞에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를 반복하는지, 이에 대한 좀 더 깊고 넓은 사회적 공론이 부재함에 대한 의구심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 몇 명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대한 성찰과 차분한 공적 담론이 필요하다. 


경향신문DB

이는 오늘날 우리 대학들의 결과 지향의 평가 및 제도와 관행 등에서 기인한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로 대부분의 대학, 특히 수도권에 근접한 유명 대학일수록 신임 교수 채용이나 승진·승급 시 SCI, SSCI, A&HCI 등 영미권 학술기관이 요구하는 국제인용색인에 등재되어 있는 소위 해외 유명 논문(특히 대부분이 영어로 씌어진)을 요구한다. 필자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터라 ‘누워 침 뱉기’식의 독백이 될 수 있겠지만, 대학의 연구 문화 중 가장 큰 문제는 타자의 언어와 시선에 의존해 우리의 문제를 우회해서 풀어가는 데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당면한 현안과 문제에 대해 모국어를 통한 정치한 논구와 통찰 대신, 타자의 관점과 관심을 반영하는 글쓰기 관행을 따른다. 이는 나아가 일종의 자기검열로 연결되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양질의 연구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언어의 사용이 연구 주제와 이론, 그리고 방법론 등과 유리되기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더욱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논문 수만 중시하고 전문서적, 번역서, 교양서 등의 저술활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풍토다. 계량화된 실적 위주의 평가, 특히 영어논문에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점수를 부여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할당된 논문 편수를 채워야 하는 제도는 성과 달성을 위한 전투적 논문쓰기를 강요한다. 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양산해 논문 자체의 질은 물론 교육과 학문 자체의 질 하락도 가속화할 뿐이다. 저술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분서갱유’라 할 만하다. 


오늘날 학제 간 융합 및 통섭이 강조되는 학문적 트렌드를 십분 인정하지만, 이를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운 학제 간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과 교수의 능력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학의 정체성과 존재방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대학과 교수의 평가를 위해선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문사의 대학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해 교육과 연구의 실제성과 유용성, 이를 통한 대학의 사회 공헌이라는 큰 명제를 소홀히 한다면, 대학 스스로 대학의 존재 근거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일들이 지금 우리 대학사회 안에서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유력한 담론의 자장에 휩쓸려 진지한 의심이나 도전 없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위기이며 한국 사회가 당면한 지적 역량의 위기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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