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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


공영방송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MBC노조의 파업은 112일, KBS새노조의 파업은 75일, YTN의 파업은 73일을 기록 중이다. KBS1노조도 5월4일 자정부터 파업에 가세했다. 그동안 방송사들의 파업은 몇 차례 있었지만 공영방송들이 ‘공정방송 복원, 사장 퇴진’이란 같은 목표를 내걸고 장기간의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방송사 측에서는 “노사협상 대상이 아닌 요구를 내세운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파업은 정치적인 파업이다. 그런데 방송사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를 되짚어 올라가보면 사장 임명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권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 정부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한 것도 행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무리한 사장 교체와 이들을 통한 시사 프로그램 폐지나 비판적 언론인들의 해고, 좌천 역시 경영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행사였다. 그러니 정치적인 파업임을 자인하는 노조 측과, 정치적인 파업이라 타협할 수 없다는 사측의 주장이 맞서 있으니 이번 방송 파업은 오래갈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들의 결방이나 뉴스 파행을 지켜보고 있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MBC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퇴근 저지 등의 돌발사고도 파업의 피로도가 높아진 데서 발생한 일이다. 이대로 나가면 아무도 바라지 않는 심각한 일들이 발발할 수도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국가적 망신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서서 원만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적인 파업은 정치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송사 희망텐트 투쟁ㅣ 출처:경향DB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최시중의 ‘앙시앵 레짐’이 무너진 후 공황상태인 것 같다. KBS의 이사회나 MBC의 방송문화진흥회 그리고 YTN의 공기업 대주주들도 권위를 상실했다. 그러니 이들이 나선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장이 자발적으로 사퇴하고 또 새 인물을 임명한다 해도, 지금의 방송사 사장 임명 체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선거캠프의 특보 등을 사장에 임명하여 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방식은 폐기해야 한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중립성을 지켜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19대 국회 원 구성에 앞서, 여야 수뇌부가 나서서 새로운 공영방송 제도의 구축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개혁을 위한 현인(賢人)회의’ 같은 것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각계로부터 학식과 덕망 있는 후보를 추천받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다. 2009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경험을 보면, 여야에서 위원을 추천하면, 피추천인은 추천해준 당을 대변했다. 학자들도 진영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모색해야 한다. 여는 야쪽에 편향된 인사를 비토하고, 야는 여쪽에 치우친 인사를 비토하는 식으로 하여 양쪽 모두 거부할 수 없는 중립적인 ‘현인’들로 회의체를 구성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하고 바람직한 형태의 공영방송 운영방안을 도출케 하고,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 ‘현인회의’가 가동에 들어가는 대로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여야 한다.

국격은 G20이나 핵안보정상회의 등의 이벤트를 통해 높아지는 게 아니다. BBC, NHK와 같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이 있을 때 국격도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 시청자는, 방송계는 공정하고 품격 있는 공영방송을 가질 때가 되었고 또 가질 자격도 충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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