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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물러나면 헌정(憲政)이 중단되는가? 대통령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물러나는 소위 하야든, 탄핵을 받아 물러나든, 두 경우 모두 헌정중단은 아니다. 헌정은 쿠데타 등에 의해 헌법과 법의 적용이 멈출 때 중단된다. 대통령이 물러나더라도 국가작용이 헌법과 법에 따라 행해진다면 헌정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헌정이란 입헌정치, 즉 헌법에 의거한 정치다. 따라서 근대 헌법의 핵심인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그리고 권력분립의 원리가 지켜지는지가 헌정 계속의 판단기준이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아닌 최순실의 뜻에 따라, 법과 절차를 어기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를 함으로써 헌정이 파괴되었다. 지금까지 대통령 본인이 담화를 통해 인정한 것이나 여러 언론보도, 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통령은 스스로 입헌정치를 중단시켰다. 따라서 정치적인 고려를 일절 배제하고 법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대통령이 물러나야 비로소 헌정질서가 회복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공적 직함이 전혀 없는 최씨에게 남북관계 등 국가기밀이 들어 있는 기록물이나 연설문을 직간접으로 유출하고, 최씨나 그 일당에게 장차관 등 공무원 인사권을 위임하거나 또는 무단행사를 방치했다. 최씨의 딸인 정유라가 출전한 2013년 상주경마대회와 관련하여 승마협회를 감사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의 보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좌천시켰다가 끝내 해임시켰다. 스스로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대통령은 또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선언을 어기고 최씨와 그 일당에게만 각종 특혜를 부여했다. 대통령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행하거나 최씨의 불법을 방조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이화여대의 자율권을 침해했다. 대통령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이를 행동하는 자유를 가짐에도 재벌회장들의 손목을 비틀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내도록 강요함으로써 재벌회장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일반적 행동 자유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

대통령은 또한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시켰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일개 사인인 최씨에게 양도하고, 친박이라고 하는 측근 여당 의원들을 통해 의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의회를 장악하거나 의회의 정상적 작동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감사원이나 검찰 등 사정기관을 측근 인사로 채우는 등의 방법으로 감사기관이나 사정기관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제거했다.

오늘의 국기문란 사태는 대통령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와 달리 우리 국회는 여당이 사실상 대통령에 종속되어 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는 종속된 것에 비해 의회로부터는 거의 견제 받지 않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검찰을 장악할 경우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입헌 정치의 핵심요소인 권력분립의 원칙이 참담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전대미문의 국기문란 사건을 대하며 국민은 참담하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민을 불행하게 한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현행 대통령제를 폐지하거나 아니면 그 권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방법을 하루속히 찾아야 할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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