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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선출된 국가권력인 대통령이 공적 절차 없이 사적 인연으로 그 권력을 사적 개인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사적 소유에 맞서는 좌우파의 공적 분노가 다시금 시민혁명으로 폭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이 이 시위의 일차 목표다.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목표를 이룬 그 다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그 다음에 약했다. 4·19혁명은 5·16쿠데타를 막지 못했고, 1987년의 민주혁명은 5년 단임의 직선 대통령제로 환원되었다. 대안적인 정치경제체제를 설계할 실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정치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도 현저히 부족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성이 실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가권력 사유화의 참담한 결과는 진행 중인 시민혁명의 한 향방을 제시해 주고 있다. 지금 여기의 시민혁명은 새로운 국가 만들기의 길을 가는 운동과 정치로 승화되어야 한다.

첫째, 국가권력의 사적 소유를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민국가’ 만들기다. 1987년 민주혁명의 성과를 담합한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공당(公黨)인 정당이 아니라 사당(私黨)인 캠프가 대통령 선거를 주도하는 정치문화에서 국가권력 사유화의 싹이 자라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나듯,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적 행위자의 권력연합과 인사개입은 공무원(公務員)을 사무원(私務員)으로 기능하게 했다. 사적 권력의 전횡은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포장마저 걷어냈다. 정치적 행위자의 역할은 감소했고, 권력독점은 심화되었다. 시민주권이 보장되는 정치제도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개헌은 시민국가 만들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경제민주화를 통한 ‘복지국가’ 만들기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모금과정은 정치적 강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전형적 방식이었다. 봉건적 지대를 지불하라는 정당성을 결여한 요구에 대기업들은 순응했다. 대통령이 직접 재벌회장을 만나 모금을 강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일견 반자본적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전횡을 통제하는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의 폐기와 강제적 모금이 교환된 것처럼 보인다. 국가권력의 사적 소유로 봉건적 자본주의국가로 회귀한 듯하다. 재벌중심의 성장과 그 결과인 고용 없는 성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민주화는 임박한 경제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도 사고되어야 한다.

셋째,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실현하는 ‘평화국가’ 만들기다. 사유화된 권력이 국가의 밖과 관련된 일인 외교·안보정책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국가의 과제로 제시했던 박근혜 정부가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무용론이나 개성공업지구의 폐쇄와 사드 배치, 한·미·일 삼각동맹의 네트워크화와 연계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협상 등은 반자본적이기조차 한, 이익을 계산하지 않은 비합리적 결정이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금기어가 되었고, 이를 대체한 통일대박론과 북한붕괴론은 마법의 주문과 같은 담론이었다. 국가권력의 사유화로, 이익이 아니라 주술적 예측에 따라 북한을 절대 악마화하고 한·미동맹을 성역화하면서 전쟁위기까지 감수하려는 주술적 안보국가가 탄생한 셈이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아니라 내치를 총리가 담당하고 대통령이 외치를 하는 방식으로 작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봉합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전·반핵·평화운동이 냉전시대 핵전쟁을 예방했다는 주장을 하면, 듣는 이의 얼굴에 소박한 미소가 피어오르곤 한다. 평화운동가조차 설마 그것이 사실일까, 의문을 제기한다. 국가의 정책결정이 결정적이었다는 생각도 이 미소를 거든다. 그러나 평화운동이란 변수를 제외하고 핵국가들이 비핵국가와의 전쟁에서 패배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핵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정치·경제적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으로 승화된 시민혁명이 새로운 국가 만들기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 운동들의 의제가 정치의 장에 진입해야 하는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국가권력을 소유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반면교사로 만들게끔 하는 것이 시민혁명의 몫이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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