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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을 때 이미 ‘위기’라는 말이 함께 나왔다. 이들에게 ‘위기’자를 떼고 어엿한 세대주로 독립시키고자 BK21, 기초학문 지원 육성, 박사후 연수 지원, 시간강사 연구 지원 등 온갖 이름의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위기’와 함께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는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채용되기 전 박사 학위자 등 연구자’로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실체가 모호하다. 대학원 진학과 학위 취득을 거쳐 정규직 교원 임용이라는 순조로운 삶을 경험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그 자리마저 줄이고 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에 어쩌란 말이냐는 소리도 들린다. 교수랍시고 으스대는 사람들한테 세금을 쓰자고? 학문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얻기 위해 학기당 9~12학점 강의를 하려고 시·도를 넘나들며 일주일 내내 뛰고 있다. 학생들은 교수라 부르지만 실제는 학교에서 배정하는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강의하면서 학문적 성과를 내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금수저와 천재만으로 학문의 후속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강사들은 부당한 지원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교육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공정한 학문 경쟁이 이뤄지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강사료를 현실화하고, 강의 준비와 학생 평가를 해야 하는 방학 기간에 임금을 지급하며, 퇴직금은 물론 사회보험을 보장해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는 거다. 1년 단위로 고용하되 무조건 재임용이 아니라 지원 기회를 보장해 최소한의 직업 안정성을 제공하자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

많은 대학들이 강사를 ‘초빙’하고 ‘겸임’시키면서 강사 수를 줄이자 일부 언론은 “강사법이 강사를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경 기준을 강화해 저공해 고연비 차를 만들라고 하면 차를 좋게 만드는 것이 맞지 차 팔기 어려워졌다고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강사법 정착은 학문후속세대 독립의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논의 중인 학술연구교수 사업도 추경에 적극 반영해 대상자 수를 대폭 확대하고 지원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그동안 생계 때문에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없던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대학은 과연 학문후속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학원생으로, 조교로 써먹고 등록금까지 받다가 졸업하면 학문후속세대 양성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수십년째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과목은 교수를 채용해야지 강사법 때문에 강사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불평해선 안된다. 이번 강사법과 학술진흥법 개정이 ‘학문후속세대’가 더 이상 위기에 내몰리지 않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선일 | 경희대 교수·민교협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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