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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school)의 어원인 스콜라(schola)에는 ‘프리타임, 레저, 토론’이라는 뜻이 있다. 단어의 의미로 보면 본래 학교라는 곳은 일상을 넘어서 자유롭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추구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 내면에는 존재와 삶의 원대한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근원적인 열망이 있으며 이 열망으로 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정신과 물질세계의 진보를 이루어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의 학교는 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입시교육은 존재와 세상을 폭넓게 탐구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고 경쟁과 통제의 교육 방식은 여전히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통제는 필연적으로 저항과 힘겨루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수시로 배움의 공간을 위협한다. 교사가 엄하게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학생이 웃으며 “야, 졸라 무섭다!”고 말하는 순간 교사의 내면은 참혹한 상처를 입는다. “교직생활 그렇게 하시면 안되죠.” “정년까지 안 하고 싶으신 모양이네.”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을 꾸짖다가 울분을 못 이겨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학부모 항의를 받게 되고 잘못된 지도 방식에 대해 사과할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학생에게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는데 교직의 어려움은 이 모든 수모를 어린 아이들 앞에서 겪고도 다음날 다시 교단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점점 아이들에게서 물러나 문제가 생기면 지도하기보다는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해 행패를 부린 학생에게 최소한의 벌을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실제로 교사는 학생을 교권침해로 신고하고, 학생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며 학생들은 서로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하여 변호사를 동원하고, 교실 참관을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시험문제와 생활기록부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면서 수업과 평가 영역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학생과 교사를 믿지 않으면서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조차 잊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벌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으면 교단을 떠나라고 하지만 이 같은 교육풍토에서는 누가 와도 사람만 바뀔 뿐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절차와 규정을 더 세밀하게 만들어 내려보내고 교사들은 매뉴얼 몇 쪽 몇 줄에 나오는 문구에 교사 자신의 지혜와 영혼을 내맡겨버린다. 이렇게 교육은 점점 가르침과 배움에서 멀어져 행정업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다시 우리 안에 있다.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교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모든 교사들 또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교육을 위한 충분한 힘을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상대를 초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지금이라도 교사와 학생들을 믿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역할, 권한과 책임을 주어야 한다. 가르침과 배움을 향한 그들의 선한 열망을 초대하여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대화를 함께 시작할 때 좋은 교육의 씨앗은 다시 싹틀 수 있다. 이제 곧 방학이다. 숨 가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어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가만있자. 이것이 과연 내가 할 일이었던가?”

<조춘애 |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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