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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프리즘’의 갑작스런 폐업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한국사회이고, 해고 노동자의 마음치유를 내세웠어도 설립자의 말처럼 주식회사일 뿐이니 폐업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어렵게 합의안이 마련되고, 노동자들이 주식을 가지는 회사로 전환되고 난 뒤에 폐업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렵사리 자기 회사를 가지게 된 노동자들이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를 닫겠다는 것 아닌가. (그동안의 정황은 마인드프리즘 노동조합의 블로그를 참고)

보통은 억지로라도 닫힌 문을 열고 회사를 살리려는 게 노동자의 심리인데, 마인드프리즘에서는 열린 회사문을 닫고 스스로 폐업하겠다는 기이한 결정이 내려졌다. 무엇이 폐업을 선택하게 했을까? 적자가 계속 누적되어 회사운영이 불가능하거나 경영진이 회삿돈을 횡령하고 도망가거나 외부환경이 너무 안 좋아져서 전망이 보이지 않을 경우 회사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인드프리즘은 이런 조건과 다르다. 회사경영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내용을 보면 부채로 알려진 돈은 투자금 형식이었고 사업도 나아지던 중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세 번이나 경영진이 바뀌고 다섯 명이 대표직을 차지했지만 회사와 무관한 인물은 없었으니 외부인물이 경영권을 쥐고 회사를 흔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 탄압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경영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싫어한다. 노동조합과의 의견 차이나 충돌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사장이나, 내 것이 아니라고 밖으로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경영진에게 내부의 감시자인 노동조합이란 존재는 눈엣가시다.

특히 IT업계의 관행을 보면, 핵심인력이나 소수의 개발자의 능력만 강조되고 대다수 개발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IT업계의 자산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변변한 노동조합이 거의 없고, 산적한 내부 문제를 풀어갈 기본구조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마인드프리즘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반대하며 내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든 직원 대표단이나 노동조합은 불편한 조직이고, 경영진이 이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노조결성을 절대 안 된다며 막는 대기업들이 버젓이 있으니,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폐업을 선택하는 건 한국의 사장들에겐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배경에는 그동안의 과정이 있다. 마인드프리즘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기업’이다. 기업이면 소유주가 있기 마련인데 사장을 찾기 어렵다. 원래 설립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고 공동대표가 되었던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인지 아무도 회사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마인드프리즘이 카카오톡의 투자를 받으며 공동대표가 된 김화영씨(현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동생)는 노동자들을 희망퇴직 시킨 책임을 진다며 작년 10월에 사퇴했다. 이 주식을 물려받고 취임한 두 명의 공동대표 역시 지난 2월 정혜신씨가 노동자들과 면담한 뒤 경영진의 주식을 1/n로 나누자고 제안하자 동의하고 사퇴했다. 4월에 취임한 현 대표는 회사의 회생이 아니라 폐업을 먼저 주장했다. 이렇게 자기 회사에 애정이 없는 대표들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정말 자기 회사라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요즘 말로 깃털만 나부낄 뿐 몸통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주식을 나눠 가지면서 모두가 주인이라는 형식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노동조합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갈등을 부추기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도구로 변했다. 단순히 수의 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은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진짜 사장 나와라!”라고 외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회생방안과 투자금이 마련되는 과정도 회사 내부에서 결정되지 않았으니, 일반 기업이라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에 실린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의 기고문에서 얘기된 6일이라는 시간, 즉 조합원과 비조합원들이 마인드프리즘의 회생안을 만장일치로 합의한 뒤에 비조합원들이 이 안을 부정하고 회사를 쪼개거나 폐업을 주장하기까지의 시간이 중요하다. 6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비조합원들은 외부지원을 약속받은 회생안을 거부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형식적으로 지금 회사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마인드프리즘의 주주이기도 하다. 주주라면 당연히 회사의 재무재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지금 폐업을 주장하는 쪽은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1월 16일,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마음치료 활동가 2명을 위해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박세영 마인드프리즘 노조 지부장(오른쪽)이 다른 조합원과 위로의 포옹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내가 가진 의심은 마인드프리즘의 사업전망이 어둡지 않다는 점에서 더 커진다.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불안이 커지는 사회, 날선 갈등으로 약자들만 찍어 눌리는 사회에서 치유는 위험한 단어이지만 위로의 단어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불안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사회에서 마음의 치유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다. 마인드프리즘의 내마음보고서나 내마음워크숍, 홀가분워크숍은 좋은 상품이 될 수 있고, 특히 개인 서비스인 내마음보고서는 다른 곳에서도 활용할 수도 있는 좋은 컨텐츠이다. 특허청에서 조회하니 내마음보고서와 워크북은 마인드프리즘 주식회사가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이런 권리를 버리면서까지 폐업을 추진한다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마음보고서 서비스를 갑작스럽게 종료하고 환불을 하면서까지 폐업을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는 ‘마인드프리즘이 진짜로 폐업할까’라는 의문도 가지고 있다. 폐업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류상의 회사를 유지하거나 이 서류상 회사가 상표권을 다른 곳에 매각한 뒤 폐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들 중 하나는 동지를 잃는 것과 동료들과 싸우는 일이다. 이 둘을 동시에 겪는 건 인생의 비극인데, 일상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비극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노동현장이다. 더구나 원망할 상대라도 분명해야 하는데, 보통 진짜 상대는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으니 비극의 깊이가 더해진다. 마인드프리즘의 조합원들도 이런 비극을 겪고 있다.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우리 망명자들’이라는 글에서 “우리들 중에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집에 돌아가 가스밸브를 틀거나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도 우리가 선언한 쾌활함이라는 것이 금세 죽음을 받아들이고 말 것 같은 위기와 표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해고 노동자들도 우리 시대의 망명자들이고 우리도 그런 위기를 함께 살고 있다. 이제 예고된 폐업은 사흘 남았다. 우리 사회는 계속 정지된 시간을 만들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의 시계가 멈췄다. 2015년 5월15일이 되면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의 시계가 멈춘다. 그냥 놔두면 곳곳에서 계속 하나씩 시계가 멈출 것이다. 이제는 태엽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하승우 땡땡책협동조합 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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