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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일곱 차례나 진행됐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은 핵심 의혹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모르는 일이다”를 되풀이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증인들은 국회 청문회에서 진술할 때 숨기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며 거짓을 말할 경우 처벌을 받겠다는 내용의 증인선서를 한다. 그리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많은 증인들이 한결같이 “기억나지 않는다”를 반복하는 것일까?

한국의 경우 위증 처벌의 기준은 ‘허위 진술’을 했는가이다. 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한국과 미국 모두 증인이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거짓된 진술을 하였을 경우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가는 양국 간 차이가 있다. 미국은 허위 진술을 사법제도의 근간을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로 취급해 매우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우선 증인의 모든 진술은 포괄적으로 판단된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증인의 발언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거나 추후 상충되는 증거 등으로 번복될 경우 이는 위증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며 오락가락하는 진술은 그 자체로 위증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위증죄의 적용 범위도 한국보다 커서 증인선서를 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 등에서 허위 진술을 하였을 경우 별도의 허위 진술죄를 통해 처벌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5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강윤중 기자

처벌의 수위 역시 매우 높다. 연방법에 따른 위증죄의 형량은 최대 5년의 징역이나 위증은 범죄 가중처벌의 주요한 요소가 되고 타인의 범죄에 대해 위증을 했을 경우 공범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실제 위증으로 인해 종신형까지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하던 미국의 두 대통령, 닉슨과 클린턴의 탄핵은 흔히 알려진 대로 도청과 백악관 성추문이 주된 원인이 아닌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은폐 공작과 위증에 기인한 바가 크다. 미국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또 다른 대통령을 특별검사의 앞에 세운 이유가 바로 되풀이된 거짓말과 변명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때늦은 이야기지만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책임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지금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광민 |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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