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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으로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려를 넘어 가시화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행이나 입국 금지, 다양한 형태의 인종주의가 표출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 도시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얼마나 전 세계적 파괴력을 갖는 것인지 보여준다. 이에 대처하는 각국의 태도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선진국이라 알려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의 인종차별적 행위와 언어들은 이러한 질병이 가진 사회문화적 성격을 웅변해준다. 한 예로 독일의 ‘슈피겔’은 이달 초 발간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다루면서 표지에 ‘Made in China(중국산)’라 표기해 물의를 빚었다. 주간지는 중국에서 발병 초기 문제를 제기했던 의사들이 당국의 심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 중국 관료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사와 관련해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공포를 일으키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심지어 인종 차별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해당 잡지를 비판했고 독일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주간지 온라인판에 달린 한 댓글은 ‘표지가 끔찍하고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공공적인 차별이며, 이것이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언론이라는 곳의 태도인가’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다른 시민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이 표지가 독일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과 실천, 자정 노력이 이러한 환난을 극복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허우후의 우한중앙병원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성을 폭로했다가 당국의 탄압을 받고 결국 이 질병으로 숨진 의사 리원량을 애도하는 꽃다발들과 초상화가 놓여 있다. 우한 _ AFP연합뉴스

오늘날 기술진보가 매개하는 지구촌이라는 상상은 의외의 경로와 접합되기도 한다. 타자 및 외부에 대한 상상과 반응이 민족주의의 강화나 혐오 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기술진보는 늘 한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 예측불가능하게 전개되거나 우리의 기대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제 지구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통분모로서의 보편성과 이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보편성은 현실에 기초하는 것이기에 늘 힘의 역학 관계를 일정 정도 반영하고, 특히 세계체제의 패권적 질서를 반영하는 기울어진 기준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종, 젠더, 계급, 빈곤, 환경 등의 시급한 의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규범과 지향, 실천으로 보편성이 수행되어야 하며 이는 자기성찰성을 전제한다. 보편성의 실천은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 아래 은폐되거나 억압되었던 우리 자신의 기이함에 대한 응시와 대면에서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이는 확진 초기, 의사 리원량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질서를 해쳤다’는 이유로 처벌을 내렸던 중국 정부가 태도를 바꾸고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고 반성하는 전향적 노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17년 전 사스 발병의 교훈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다시 과오를 범했다는 중국사회의 자기 반성적 목소리, 이를 계기로 야생동물 식용금지에 관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대중의 논쟁과 토론도 중요하다. 혐오를 모티브로 한 유력 매체의 언론 기사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처한 독일 시민들의 노력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진영논리를 넘어 이러한 노력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더욱 폭넓게 논의되고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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