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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세미나를 시작했다. 17세기 존 로크부터 21세기 존 테일러 개토까지 경험 중심, 아동 중심의 교육을 주창해온 사상가들의 이론을 공부하고 실천을 탐구하는 자리다. 스무 명이 넘는 신청자 중 대부분은 대안학교 교사들이다. 이들이 한두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동기는 주로 ‘답답해서’라고 한다. 현장 교사들의 답답함은 대안교육의 정체 현상과 맞물린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수백개의 대안학교가 전국에 생겨났다. 시민들의 힘으로 대한민국 교육이 변하고 있구나, 가슴 벅차던 시절이었다. ‘공교육’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와 학생들은 숨통이 트였다. 자유로운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들은 흐뭇해했다. 과업에 들볶이던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서 믿고,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면 점차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눈빛이 살아났다. 

그랬던 대안학교가 예전 같지가 않다. 제일 큰 어려움은 신입생이 줄고 있다는 거다. 공교육에서 대안교육을 ‘문제아를 위한 대체교육’으로 흡수하며 대안학교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곳’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더 두터워졌다. 각 현장이 생존 모드로 전환하며, 대안학교의 큰 장점이었던 과감한 교육 실험이 줄고 있다는 것 또한 현장 교사들이 느끼는 답답함의 원인일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왔지만 그간의 대안교육운동에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의도치 않은 ‘이분법적 사고’로 놓쳐온 것들이다. 입시 중심의 교육을 비판하며 경험으로 배움을 체득해가는 교육을 지향했지만, 그것이 ‘지식교육의 쓸모없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인류가 벼려온 지식 또한 중요한 간접경험이다. 그런데 입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식교육의 터부’로 이어지며, 이런 면을 간과했다. 다양한 경험을 한 대안학교 아이들은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인간관계에도 능숙하지만,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는 게 없다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상상력의 빈곤’이다. 새로운 교육을 상상하면서도 결국 근대학교의 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내용과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 대안학교도 결국 ‘학교’ 시스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부대끼니 교사들은 그 속에서 더욱 지칠 수밖에 없다.

“대안학교도 결국 학교잖아요.” 공교육을 벗어났지만 굳이 대안학교를 택하지 않는 그들의 문제제기에 응답할 때다. ‘학교’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생기를 되찾고 자기답게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그람시)를 지나고 있는 교육에 질문을 던진다. 쉽게 답을 찾긴 어렵지만 우선 세미나를 꾸준히 이어가고자 한다. 교사들의 치열한 고민이 모여 대안이라는 이름의 안티테제가 ‘합’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길 기대한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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