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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후 자유한국당의 궤멸을 보면서 보수의 몰락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보수는 우파, 진보는 좌파라고 한다. 소위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좌파보다는 진보, 혁신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명칭이야 어떻든 좌우, 보수·진보라는 용어와 진영은 있는 것이고 영국의 집권당도 보수당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름 이념과 철학을 갖췄다.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 내지 우파는 자유와 성장을 중요시하는 반면 진보 내지 좌파는 평등과 분배에 더 역점을 두는 쪽이지만 요즘은 혼재되어 있다.

문제는 당신은 좌파냐, 우파냐고 누가 물었을 때 대답이 망설여지는 순간 어설픈 중도, 기회주의자, 회색주의자 등으로 전락되는 경우다. 좌도 싫고 우도 싫은 사람은 어떡하나. 아무튼 ‘중도’ 비슷한 말을 쓰는 정치인은 성공하지 못했다. 안희정의 ‘중도 확장 대연정’, 안철수의 ‘중도’ 모두 실패였다. 아직까지 ‘중도’는 정치인에게 금기어다. 이러니 국민 개개인도 피곤하기 마련이다. 세계적 흐름은 좌우의 구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만 난리다. 이번 지방선거는 ‘보수의 몰락’이 아니라 한심한 ‘자유한국당의 궤멸’이라고 해야 맞다. 그럼에도 ‘보수의 몰락’이니 ‘좌파의 전성기’니 이런 말들을 아직도 버젓이 쓰고 있다. 좌우와 보수·진보의 원산지인 영국도 이제 그 구별이 무의미하다. 노동당이 보수당 대처 총리의 정책을 수용해서 집권하고 이를 보고 배운 보수당이 분배를 중시하는 노동당의 이념을 받아 ‘따뜻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39세의 캐머런 정권을 만들었다.

지방선거 때 방송 3사 출구 조사를 보면 20대와 30대 이상의 성향이 확연히 달랐다. 30대 이상은 후보자 결정 고려 1순위가 ‘정부 경제정책’을 꼽았으나 20대는 ‘후보의 도덕성’을 선택했다. 20대는 기존의 분석 틀에 적용하기 힘들고 특정 이념, 정당 충성도가 낮아 자기 이익에 반하면 언제든 등을 돌리는 세대로 판명된 것이다. 고전적인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문제는 그러한 이념적 가치를 양쪽 틀에 따로따로 욱여넣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다기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사안별로 접근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우파인 기민당과 좌파인 사민당이 세 번째 대연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자리 배분이 아니라 양당의 정책을 공유하고 있음은 도식적인 좌우의 구별이 얼마나 우스운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안보, 경제, 문화, 복지 등 현안을 어느 한 광주리에 담아 넣기 힘들 때는 항상 국가의 미래와 어려운 이웃의 관점에서 보면 된다. 최대 주 52시간 근무제의 획일적 적용을 반대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할 수 있고,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찬성하면서도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인재 |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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