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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1

소년의 비행명은 ‘방화’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소년분류심사원 상담실에 앉은 아이는 앳된 얼굴의 중학교 1학년이다. 유아기에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이후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일용 노동을 하는 아버지, 두 살 많은 형과 함께 작은 방이 3개 있는 낡은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술을 마시다 잠들었고, 형은 자기 방에서 게임만 했다. 12살 소년은 외로웠다.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소년은 가정에서 얻지 못한 따뜻한 관심을 학교에서 받고 싶었지만, 입시경쟁에 바쁜 학교는 소년의 정서적인 욕구를 외면했다. 소년은 자신의 힘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기로 결심했고, 실천에 옮겼다. “아버지와 형이 없을 때 집에 불을 질렀어요.” 이유를 물어보았다. “우리 집이 홀랑 다 타서 단칸방으로 이사 가면, 아빠 하고 형이랑 단칸방에서 같이 살 거니까. 그러면 얘기도 많이 하고, 훨씬 행복해질 것 같아서….”

 # 소년 2

소년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비행명은 ‘특수절도’와 ‘환각물질 흡입’이다. 친구들과 마트에서 담배를 훔치고 모텔에서 본드를 흡입했다. 어머니는 소년이 세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소년의 할머니는 건물 청소와 식당일을 하면서 소년을 홀로 키웠지만, 소년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네 노는 형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가출해서 생활비가 떨어지면 절도를 일삼았다.

장래희망은 요리사, 꼭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가 혼자 저를 키우셨어요. 근데 아무리 어려워도 끼니 때마다 제 밥상을 꼭 차려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른이 되면 요리사가 되어서, 할머니한테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 거예요.”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 선 아이들은 보호처분을 받는다. 그중 일부 소년들은 판사가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을 결정한다. 보호처분은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의 주머니를 뒤져 훔친 장물을 저울에 매달아 벌주는 것이 아니다. 소년들은 담임교사, 임상심리사, 상담교사, 전문분류심사관과 함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비행을 진심으로 반성한 후 다시 법정에 섰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소년 1은 전문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고, 군대를 갔다 와서 사회복지사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던 꿈을 곧 이룰 것이다. 소년 2는 보호관찰 기간 중 재범을 해서 소년원 10호 처분을 받았지만, 서울소년원 한식 조리반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소년원 퇴원 후에는 호텔 한식당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 소년의 할머니는 난생처음 호텔에서 손자가 차린 밥상을 받으셨다.

부산 여중생 사건 등 최근 발생한 10대들의 잔혹한 폭력사건으로 소년법 폐지 및 엄벌 위주의 소년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았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방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방화’라는 강력범죄를 한 소년 1과 절도 등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소년 2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 번의 비행으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 서는 범죄소년은 연간 4만여명이다. 4만여명의 소년범을 수용하기 위해 몇 개의 교도소를 새로 지어야 할까?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학부모가 무릎을 꿇는 나라에서 교도소가 들어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소년 1과 소년 2의 이름을 불러주자. 비행청소년들이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보호처분의 내실화가 실현된다면, 소년범죄의 예방과 재범 방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임을 확신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인 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될 것이다. 깊어가는 겨울, 매년 이맘때 나누는 온정과 관심을 이번엔 심사원, 소년원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꿈이 무엇인지, 한 번 물어보는 것은 또 어떨까?

<최원훈 | 법무부 서울소년분류심사원 교무과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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