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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사태는 우리 식탁의 풍경을 바꾸었다. 계란이 들어간 각종 제품도 외면을 받았다. 밥상의 걱정이 살충제 계란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전조도 보였다. 문자 그대로 누란지위(累卵之危)다. 먹거리 안전이라는 기본권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었다. 숨을 고르고 지난 15일 이후의 일들을 찬찬히 복기해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친 수준이긴 하지만 축산물 안전관리 체계의 개선방안이 여러 가지 제안되었다. 축산현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의 한계, 농식품부와 식약처의 농축산물에 대한 이원화된 관리체계 때문에 생긴 사각지대 문제 해결 방안 등이다. 현실의 문제는 첩첩산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살충제 계란 사건으로 먹거리 위기가 그나마 지금이라도 드러난 것이 다행이다. 계란의 살충제는 결국 촘촘한 식품 안전망을 만들어낼 카나리아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살충제 계란 사태'와 관련 정부 책임자를 고발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14일 정부의 초기 발표와 대처는 인상적이었다. 계란처럼 매일 먹는 대표적인 식품에서 유해물질이 단(!) 두 시료에서 검출되었다고 해서 계란의 전국적 유통금지를 즉각 이끌어낸 정부를 본 적이 없다. 곧 이어 나름 신속한 검사로 계란 공급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티도 있었다. 이른바 ‘불검출’ 농장의 계란에서 다시 살충제가 검출되기도 했다. 전에 모르던 새로운 살충제 성분이 느닷없이 나타나기도 했다. 난각코드의 부실관리 문제도 불거졌다. 그래도 재검사 농가와 검사 대상 살충제를 확대해가며 문제가 되는 살충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점은 고무적이다.

정작 아쉬웠던 것은 소통 문제였다. 식약처는 매우 신속하게 때로는 전문가 단체의 도움을 받아가며 안전문제에 대한 걱정을 줄이려 노력했다. 농식품부도 사건 발생 단 며칠 만에 ‘살충제 계란 전수조사’를 마치고 ‘향후 유통되는 모든 계란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하지만 이런 노력은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고 결국 혼란만 가중시켰다.성급하게 국민의 우려를 가리려 했던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출발이 되었어야 했다. 최선을 다해 정확한 정보를 하루빨리 찾아내겠다고 말하면, 우리 국민은 기다려주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기 관찰 연구가 없기 때문에 참고할 선례가 없다. 살충제 오염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지역에 유통되었는지 등 노출에 대한 필수적 정보도 부족하다. 장기간에 걸친 추적관찰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할 일이 적지 않아 몇 달 내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터놓고 투명하게 보여주면 좋겠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위험정보에 대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한국환경보건학회에서 성명서를 통해 밝혔듯이, 계란처럼 매일 먹는 식품에 대해 실제 우려해야 하는 것은 ‘만성’독성 영향이다. 식약처가 ‘급성독성’ 영향에만 집중하여 매일 먹어도 안전한 계란의 수를 언급하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될 때, 이미 제대로 된 소통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2001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탄저균 아포를 담은 우편물이 방송사 등에 발송하는 테러 기도로 몇 명이 사망했다. 탄저균은 피부의 상처를 통해 침투하는 치사율이 높은 세균이다. 그즈음에 장난으로 밀가루를 마치 탄저균처럼 우편봉투에 넣어 보내는 유사테러행위가 자주 발생했다. 미국 사회는 더 커다란 불안과 혼란에 빠졌고, 보건당국은 신속한 대처를 주문받았다. 당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많이 보강된 직원은 리스크 커뮤니케이터(위험소통 전문가)였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위해 관련 정보를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위험과 불안 관리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새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우선 가치로 지키며 원칙과 소통을 강조한다. 그런 이 정부를 국민들은 신뢰하고 지지한다. 불안하고 답답하더라도 국민은 정부의 노력을 믿고 정확한 정보가 나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줄 것이다. 소비자를 믿어주면 좋겠다. 지금의 경험과 시행착오는 향후 생산현장의 축산물 안전위생 정책을 개선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될 것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초래한 혼란과 비용이, 결국 우리 식탁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기를 희망한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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