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주 수요일 아침, 출장을 떠날 때 서울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침 더위가 꺾여가고 찬바람 맛도 본 터라 더위와 먼지에 시달릴 베이징으로 가야 하는 처지를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뉴스에 나오던 중국의 먼지 소식은 뿌연 먼지가 가득한 베이징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10여년 전에 경험했던 베이징은 너무 더웠다. 예상은 빗나갔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내렸을 때 볼을 스쳐간 바람은 서늘했다. 게다가 먼지도 없었다. 하늘은 깃털구름 하나 걸린 예쁜 파란색. 단, 며칠간 허락된 행운이었다.

행운의 3일간, 열심히 도서전을 드나들었다. 중국 시장의 크기와 가능성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출판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베이징에 왔다. 북한을 포함해서 87개국의 출판사들이 왔다. 중국 업체들의 관심을 받고픈 출판사들은 제법 큰 전시장을 꾸몄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시장을 해마다 늘리고 있는데 올해 우리나라 전시장은 줄었다. 북핵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긴장의 영향이다. 도서전에서 만난 다락원 정규도 대표는 올해 중국과의 계약이 한 건도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만료된 저작권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직접 수출하는 길도 막혔다. 한국에서 수입된 책에는 중국 정부가 출판예정도서목록(CIP)을 내주지 않아 유통도 되지 않는다.

중국과 동남아, 남미 등으로 활발히 수출을 하는 출판사들에 중국은 지금도 30% 정도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출판사들은 앞으로의 가능성은 더 크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큰 장애를 만난 것이다. 중국의 모든 출판사들은 따져 보면 공공기관이다. 세계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에 부여되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정부가 관리하면서 정해진 공공기관인 출판사에만 배정하기 때문에 민간출판사는 그 번호를 사거나 배정받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방침에 반하는 출판은 봉쇄되어 있다. 정치적인 상황에 큰 변화가 없으면 한국과 중국의 출판물 거래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도서전에 참가한 책들도 그대로 포장해 한국으로 다시 가져가는 조건으로 반입할 수 있었다.

도서전을 주관하는 중국출판수출입공사 니징 부총경리는 한국과 중국 사이 출판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그에게 중국을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초대하는 제안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크고 중요한 출판사들을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출판협회 리펑이 부회장과는 한국과 중국의 출판인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기구를 정식으로 발족시키기로 합의했다. 실제 거래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치적 긴장이 풀릴 때를 대비해서 물밑에서 열심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교류를 다시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한국 출판의 중국 진출이 기대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국제관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의 중국 국내관에서 인상적인 것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몇 개 볼 수 없는 큰 전시관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한국 인구의 30배에 달하는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놀랍다. 그리고 개별 전시관들을 출판사 10~20개로 묶인 그룹들이 운영하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 정왕관 총편집의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조원 정도의 매출 규모를 가진 그룹들로 출판사들을 묶어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출판그룹은 이미 상장에 성공했고 인민교육출판사, 고등교육출판사, 어문출판사 등이 포함된 교육출판그룹은 전자출판과 교육 솔루션 중심으로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규모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사들과 어깨를 견주는 그룹을 수십개 만들어 놓고 다시 더 새로운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정보기술(IT)까지 접목하기 위해 기업공개를 하면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정부의 강한 영향력 아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국의 출판보다 작고 다양하고 유연한 한국의 출판이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강점이 있다고 하지만 중국의 집단적 노력 앞에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한국의 창의적인 출판사들이 중국의 집단적인 공세를 넘어 살아남기 위해 정부와 출판계의 비상한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번 베이징도서전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만화,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전자책,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이 따로 전시관을 설치했다. 중국이 출판을 중심으로 모든 콘텐츠를 묶어 힘을 모으고 있는데 우리가 콘텐츠들을 일부러 조각내고 투자와 실패를 반복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