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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 예방에 이어 6일 아요디아에서 개최되는 ‘허왕후(許王后)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한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김 여사를 수행하고 있다. 일개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주제로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일에 일국의 대통령 부인과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 외교사절로 참가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후(현지시간)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모디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가락(일명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허왕후가 됐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기이’란 말 그대로 기이한 설화이다. 우선 허황옥이 142세에 사망했다는 것부터 실재성이 없다. 아유타국 공주라고 하는데 아유타국은 인도의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허왕후 기념공원이 만들어지는 ‘아요디아(Ayodhya)’는 네팔에 인접한 인도 북부의 인구 6만명인 소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이 일부 한국인의 아요디아설을 근거로 한국과의 친선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한국의 고사에 나오는 허황옥의 모태가 자기 지역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념공원까지 만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설화 속의 허황옥은 오늘날 한국·인도의 역사적인 유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국내 학자들은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삼국유사> ‘기이’편에 가락국기를 쓸 때 시조 김수로왕의 출생과 성장에 불교적인 설화를 가탁(假託)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연 스님은 ‘기이’편에 “수로가 알에서 깨어나 10여일 만(踰十餘晨昏)에 키가 9척 크기로 자라서 같은 달 보름에 왕위에 올라 가락국 시조가 됐다”고 신비롭게 묘사하였다. 6세의 김수로가 아유타국에서 3개월 동안 배를 타고 온 16세의 여자와 결혼한다는 내용도 현실성이 희박하다. 일부는 아유타국을 인도의 아요디아라고 주장하는데 아요디아라는 지명도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또 설사 인도 북부의 아요디아가 아유타국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기원 48년에 네팔 접경에 가까운 인도의 최북단에서 한반도의 최남단인 김해까지 배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여정이다.

일개 가탁된 설화를 갖고 국가 간의 혈연관계를 주장하고 일국의 수장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 긍정하고 지지하여 외국의 정체불명 행사에 대통령 부인이 정부의 장관을 대동하고 참석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행동이다. ‘허황옥 도래설’은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 김씨들이 긍정적으로 믿고 있다. 근세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호사하고 있다. 김해 김씨 중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후예라고 자처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 신분으로 김수로왕과 허왕후 제전에 참배하였고, 김종필씨는 현직 국무총리 신분으로 김수로왕과 허왕후 제전에 제관으로 참배하였다. 국가 수장 신분으로 제복을 갖추고 씨족의 문중제사에 참배한 사실은 다시금 되새겨 볼 일이다.

일부가 김수로왕 설화를 실제 있었던 일처럼 주장하는 것을 가지고 국가가 나서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같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단군왕검도 국가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여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의 단군릉에 가서 참배했어야 하지 않는가? 학문적 합의 없이 몇 사람의 가설을 가지고 국가의 원수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국가적인 외교행사로 비화하는 것은 엄연한 역사의 왜곡이다.

<이형구 |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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