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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하려는데, 오디세이학교 학생 몇몇이 출판사에 남아 있다. 일본 대안학교 탐방을 준비하는 팀이다. 필수수업은 빠지면서 자기들 하고픈 일은 저렇게 열심이라고 길잡이 교사가 웃으며 눈을 흘긴다. 때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중요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누가 어째서 이것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단 말인가.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이 질문들은 주체적인 판단, 선택과 책임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오디세이학교는 민들레출판사에서 파생된 대안학교 ‘공간민들레’가 협력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이다. 고1 학생들이 1년 동안 지정 대안학교에서 공부한 후 원래 학교로 돌아가면 학력이 인정되어 2학년으로 진급한다. 4년 전 고교자유학년제로 시작해 지금은 각종학교로 분류된 오디세이학교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면서 뭐가 제일 좋은지를 묻자 한 학생이 답했다. “제 생각이 뭐냐고 묻는 거요.” 여행이나 프로젝트수업 등 공교육에서 접해보지 못한 특정 교육과정을 손꼽을 거라는 예상을 빗나가는 답이었다. 그동안의 학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왜”냐고 묻는 행위는 대드는 것, 버릇없는 것, 되바라진 것, 당돌한 것으로 취급되어 질문을 거세당하는 경험만 하다 이곳에서 들은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은 신선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도 했다.

오디세이학교에서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묻자 학생은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제 생각이 뭐냐고 묻는 거요” 어떤 사안에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덧붙여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피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슬쩍 친구들 사이에 묻혀서 잘 수도 있고, 멍하니 딴 생각하며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공교육 교실이 그립기도 했단다.

“그냥, 뭐 하라고 정해주면 안돼요?”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사뭇 복에 겨운 투정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그 심정도 이해가 가는 것이, 주체적 삶은 피곤하다. 선택에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며,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1년의 오디세이학교를 마친 후 대부분의 학생들은 원래 학교로 돌아간다. 두 주먹 불끈 쥔 투사가 되기도 하고, 무기력한 친구들을 리드하는 적극적인 학생이 되기도 한다. 더러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학교 밖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수업보다는 생활로 접근하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들이다. 살아 있는 학교가 되려면 삶이 스며들어야 한다. 삶이란 먹고 자고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의 다른 말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오디세이학교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그 시도는 가능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선택의 권리를 아이들에게로 돌려주면 된다.

12년의 학제 틈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정책적으로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삶의 전환과 탐색’을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응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생은 숱한 갈림길 위에 선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은 늘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선택의 여지없는 인생’은 단조롭고 불행하다는 사실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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