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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17일 오후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황급히 헬기에 올라 전방 1사단으로 날아갔다. 군 당국이 이날 새벽 2시반쯤 임진강을 통해 침투하려던 북한군 1명을 사살했다며 현장을 공개한 것이다. 사살된 북한군 옆에는 잠수복과 검은색 오리발이 놓여 있었다. 이날은 김영삼 대통령이 유엔본부 방문길에 오른 이튿날이었다. 당국은 북한이 대통령 부재 시 전투준비 태세를 정찰하기 위해 침투조를 내려보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당국이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1차 저지선으로 임진강 수중에 철조망을 쳐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군은 철조망이 떠내려갈 때마다 보수해왔다고 밝혔다. 이 북한군은 수중 철조망을 통과한 뒤 절벽을 타고 오르다 발각됐던 것이다.

한강 하구 지역은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허용되는 곳이다. 그러나 남북 대치가 극심해지면서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이 됐다. 군 당국의 입장에서는 군사분계선을 그을 수 없는 해상이라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접근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한강과 임진강이 섞이는 이곳은 얕은 수심에 하루에 두 번씩 조수가 바뀌고 수위 차이가 3~7m에 이르는 데다 유속까지 빠르다. 여기에 해도조차 없으니 출입이 허용된다 해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북한군의 수중 침투가 중단돼 수중 철조망이 무용지물이 되었어도 지금껏 ‘민감수역’으로 관리돼온 것은 이 때문이다.

남북의 군·해양 당국이 5일부터 한강 하구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수로조사를 시작했다. 김포반도 동북쪽 끝에서부터 강화도 너머 교동도 서남쪽까지 강과 바다의 수심을 측정한 뒤 해도를 작성해 남북이 함께 이용하자는 것이다. 무장 북한군이 침투해오던 살벌한 장소가 평화수역이 된다니 격세지감이다. 원래 이곳은 황복과 참게로 유명하다. 모래 등 골재가 풍부하고 관광지로 개발할 여지도 높다. 첫날 남북 전문가들이 6척의 선박에 함께 타기로 돼 있었는데 북한 쪽 인원들이 썰물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65년 만에 처음 만나는 데다 해도까지 없으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이제 남북이 한배를 탔으니 순풍에 돛단격으로 성과를 내기 바란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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