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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비극이 발생한 지 벌써 83일이 지났다. 그동안 침몰 원인과 구조 회피를 둘러싼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선장 구속과 재판,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나 유족과 시민들의 눈으로 볼 때 여전히 답답하고 더디기만 하다. 급기야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서 1000만명 서명 작업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도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책임 추궁이 가능한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여야 합의에 의해 7월 중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법안으로 처리할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세월호 특별법에 포함돼야 할 기본 원칙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 원칙에 충실한 특별법이어야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단순히 생존자들을 상담하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니다. 4·16 참사와 같은 비극의 치유는 사실 ‘인정’, 책임 ‘추궁’, 공동체 ‘재건’, 피해 ‘배상’이라는 4개 단계를 거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에만 치중함으로써 빚어질 오류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원래 이 방법은 미국 정부의 하와이 원주민 탄압과 2차대전 시기 재미일본인 억류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통합적 해법이다. 지금 제주 4·3항쟁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정부와 군대의 정치군사적 책임을 다루기 위한 미행정부 상대의 청원 준비 작업에 원용되고 있다.

둘째, ‘국민 참여’ 원칙의 준수이다. 법률 제정은 국회 고유권한이나 유가족이나 시민사회의 다양하고 중요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이번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부만의 작업으로는 아무것도 성사되기 어렵다. 특히 법률가나 전문가만의 의견으로는 이 미증유의 국난과 같은 사안 처리에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피해 유족과 시민들의 상식과 경험에서 우러난 여러가지 소중하고 유용한 의견들이 법률안에 스며들게 되었으면 좋겠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가운데)과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셋째 ‘사전 예방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이런 대형 참사가 단순하게 위기 모면 방식의 임기응변이나 땜질 처리에 의해 반복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예산 증액을 시도하고, 정부 부처를 해체하거나 ‘헤쳐 모여’하는 식으로 사태 수습을 해서도 곤란하다. 더 많은 권한과 지원을 보장하되 철저하게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방식의 정부기구 개편이어야 한다. 사전 예방의 원칙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기 관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대응 원칙이다. 따라서 법률안에는 포괄적 재발방지대책 등이 구체적으로 열거돼야 한다.

째, 4·16 참사를 통해 우리가 통감해야 하는 기본원칙은 안전 원칙 준수와 안전 문화 확보에 있다.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는 법률 제정과 집행에 좌우되지 않는다. 안전사회는 더 이상 안보국가, 성장국가 중심의 낡고 무력한 패러다임만으로는 인간생명존엄과 인권 보장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사회체제의 청산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한 사회구성이다. 다섯째, 투명성의 원칙이다. 국가안보나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 아래 진행 과정을 감추거나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는 피해 가족과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국익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여과 없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고 공개돼야 할 것이다.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책임 추궁을 위해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이야말로 이 4·16 참사 진상조사 및 책임 추궁 기구의 자율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의 대전제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회의 조속하고 원만한 처리를 지켜봐야 할 계제이다.


허상수 | 세계섬학회 사회적 치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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