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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큰빗이끼벌레

opinionX 2014. 7. 8. 21:00

최근 4대강을 비롯해 전국 각지 정체 수역에서 잇달아 발견되고 있는 큰빗이끼벌레는 갑자기 나타난 신종 생물체가 아니다. 물속 고정된 곳에 붙어 군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태형동물(이끼벌레)은 고생대 초기부터 4억년 동안 1만6000여종이 화석종으로 확인될 정도로 지구상에 오랫동안 번성했던 생물이다. 현생종도 500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큰빗이끼벌레로서는 오히려 인간이 갑자기 나타난 괴생물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태형동물은 바다에 136종, 민물에 10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큰빗이끼벌레는 민물산 태형동물 가운데 한 종으로, 1995년 서지은 우석대 에코바이오학과 교수가 발견해 학계에 보고하기 전까지 국내 미기록종이었다. 북미가 고향인 이 고착형 생물체가 어떻게 한국 내륙 깊숙이 들어와 살게 됐는지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서 교수가 조사할 당시 가두리 양식장이 없는 주암호에서는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양식장 수입 물고기를 통해 휴면아(休眠芽)가 유입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영산강에 번식중인 큰빗이끼벌레 (출처: 연합뉴스)


큰빗이끼벌레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은 분명하다. 생김새, 감촉, 냄새, 생태 모두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식장이나 공장 시설, 선박 등에 부착해서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최근 4대강에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는 것 자체가 4대강 생태 환경이 바뀐 증거이기도 하다. 댐이나 저수지, 호수 등 정체 수역에서 사는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으로 진출한 것은 4대강이 강이 아니라 호수 환경이 됐음을 말해준다.

생태 교란종이 출현할 때마다 그것이 정력에 좋다거나 암에 특효가 있다는 걸 밝히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지난 4일 공주보에서 큰빗이끼벌레를 보면서 그런 농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연안을 따라 서식하는 큰다발이끼벌레가 그렇다. 한국 해역에도 널리 분포하는 이 태형동물에서 추출한 브리오스타틴(Bryostatin)이라는 천연 물질이 질 좋은 항암제로 각광받고 있다. 어쨌든 생태적 현실이 된 큰빗이끼벌레에 대해 다각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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