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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 10대들의 범죄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친다. 정치권은 국민 여론을 의식해 소년법 개정과 엄벌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지만,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위한 기관 증설, 인력과 예산 지원에는 무관심하다. 따라서 비행청소년의 시설 내 보호처분을 담당하는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정상적인 기관 운영이 어렵고, 그 결과는 재범률 증가로 나타난다.

소년부 재판을 앞둔 비행청소년들은 3~4주 동안 법원으로부터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된다. 위탁 목적은 비행의 원인 진단과 재범 방지를 위한 교육이다. 이를 위해 집단상담, 심리치료, 인성교육 등 교육활동을 하고, 휴일에도 반성문, 과제물 작성,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게 한다.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에 근무하는 보호직 공무원들은 한 달에 5~6일 생활관 당직근무를 한다. 평소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지만, 당직인 날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연장근무를 한다. 주말과 공휴일, 명절에도 당직일 경우 수용관리와 생활지도를 위해 24시간 근무를 한다. 다음날 오전 9시에 근무가 끝나면 24시간 근무를 했으니 퇴근해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수업과 생활지도, 면회지도, 법원 출장 등을 위해 정오에 퇴근하거나 대체근무자가 없으면 아예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이럴 경우 32시간을 연속 근무하고, 이를 일주일에 2회 하면 주 80시간을 일하게 되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는 시대에 주 80시간 근무가 일상화된 곳이 소년보호기관이다.

서울소년분류심사원의 경우 적정 수용인원은 130명이지만, 실제 수용인원은 160~200명이며 200명을 초과할 때도 많다. 한 호실에서 많게는 20명 이상의 위탁소년이 생활할 정도로 구치소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비행청소년의 약 30%가 유년시절 부모의 가정폭력과 이혼, 버림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품행장애 등을 갖고 있다. 교육과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생활지도를 하는 것은 자기 절제와 희생이 필요한 고도의 감정노동이다. 인권친화적인 생활환경이나 교육환경과 거리가 먼 과밀 수용, 32시간 연속 근무하는 보호직 공무원의 근무환경 속에서 비행청소년의 심성 순화와 효과적인 교정·교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관악산 폭행 사건 등 최근 발생한 잔혹한 청소년 범죄로 인해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만명을 넘어섰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소년법 등 관련 법령 개정에 대해 관계부처가 국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작년에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직후 상황과 흡사한 과정이다.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되어 비행 원인을 진단받고 교육을 받은 후, 보호관찰처분을 받아 가정과 학교로 돌아간 비행청소년의 재범률은 약 40%다. 문제는 40%의 재범률을 더 낮추기 위해 시간과 인력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은 ‘법의 개정을 통한 엄벌’에만 있다는 것이다.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은 비행청소년 선도와 교육의 ‘현장’이자 ‘마지노선’이다. 소년법 개정보다 소년보호기관의 혁신이 절실하다.

<최원훈 |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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