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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이 또다시 쑥대밭이다. 제주 국제관함식 때문이다. 강정마을회는 지난 3월 관함식 유치 반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재차 주민 의견 수렴을 요청한다. 이틀 전 관함식 찬성 주민들은 ‘대통령의 유감 표명’과 ‘공동체 회복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조건으로 마을총회를 다시 열었고 국제관함식 유치를 결정한다. 반대 주민들은 ‘정부·해군 협잡질에 우리끼리 싸우지 맙시다’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는 참여정부 때 ‘민항 위주의 해군 기항지’라는 조건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해군 주둔지가 아닌 잠시 들르는 항구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군과 민간이 공존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해군 기항지? 민군복합? 관광미항? 명칭에서부터 주민을 위하는 것처럼 꾸며진 거짓말이다. 그리고 제주해군기지는 지난 11년 동안 숱한 불법과 주민 탄압으로 세워진다.

해군은 ‘주민을 매수하라’는 교훈을 2002년 화순과 2005년 위미에서 습득한다. 해녀와 어촌계, 지역주민 반발이 극심했다. 강정마을은 애초 제주해군기지 후보군에 없던 곳이다. 2007년 4월, 당시 마을회장은 마을 규정을 무시한 채 ‘해군기지 관련의 건’으로 긴급 임시총회를 소집한다. 마을 주민 87명이 참석했고 해군기지 유치를 계획대로 통과시킨다. 참석한 대다수는 해군과 접촉한, 20~30년 어업보상을 미리 받은 해녀들이었다.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 유치 결의를 주도한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주민 725명이 참가해 반대 680명으로 해군기지 반대를 결정한다. 찬성과 반대의 극단적인 대립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제주도의 8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한 2009년 제주해군기지 입지타당성 평가에서 강정마을이 대안지로 선정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해군은 기본계획보고서와 환경영향평가서에 매입지 내에 민가가 거의 없고 부지 매입이 용이하며 주민과의 마찰 최소가 장점이라고 밝힌다. 검토 항목은 극히 단순하고 항목별 점수는 조작되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다는 명분으로 법이 정한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되었다. 국방부 장관은 환경영향평가서가 제출되기도 전에 국방·군사시설 실시 계획을 불법으로 승인하고, 제주도의회는 2009년 제주도 지정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제주해군기지 부지와 강정천, 강정등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맹꽁이와 붉은발말똥게, 제주 고유종인 제주새뱅이, 10종 이상의 국내외 법적 보호종 산호충류는 모두 사전 환경성 검토에서 누락되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천연기념물, 생태계보전지역, 해양도립공원, 절대보전지역 등 7개의 보호지역은 무용지물이었다. 태풍에 해군기지 방파제 케이슨이 깨져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영산강유역환경청, 문화재청, 대한민국 국회는 진실을 방치했고 불법을 용인했다. 지난 11년간, 경찰에 연행된 강정 사람은 700명이 넘는다. 구속, 실형을 받았고 수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주민들을 상대로 34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고 결과도 엉망진창이었다. 풍비박산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서로 견제하고 상처는 깊었다.

조건 없이 사과하고 뭇 생명의 치유를 위해 손을 내밀어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판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군함 사열을 조건으로 대통령의 주민 면담을 추진하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 11년의 불법과 억압의 진상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강정마을은 올해도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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