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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로서 그리고 현직 영어교육자로서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2년도 대입제도개편안과 관련한 교육부 발표에 우려를 감출 수 없다.
2014년부터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 절대평가제도가 추진되었지만, 일부 과목만 도입된 절대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8학년도 수능에서 기초과목 중 영어만 절대평가 방식으로 시행됨으로써, 기초과목 간 학력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국어와 수학은 이전과 같이 상대평가로 시행되었고 1등급과 2등급이 4%와 7%로 유지됨으로써 변별력을 갖춘 반면, 영어는 절대평가 실시로 1등급 10.03%, 2등급 19.65%로 평가의 변별력을 상실했다.
지난달17일 충남 공주시 한일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날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국어와 수학에 비해 1등급과 2등급 누진 비율의 차이는 3배 가까이 된다. 앞으로 이와 같이 과목별로 다른 방식의 평가방법을 지속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동일 기초과목군으로 분류된 국어, 영어, 수학의 과목 간 기초학력의 불균형이 심각해질 것이다. 이미 올해 많은 주요 대학에서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결과에 대비하여 수능 영어 반영 비율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의 비중을 높였다. 이는 평가방식이 기초 교과과목 간 다르면 학교 교육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역량의 균형이 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은 문·이과 구분 없는 융합형으로 선택과목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기초과목의 균형 잡힌 능력의 토대 위에서, 개인적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동일 기초과목군에 다른 평가방식을 적용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과 진로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평가방식에 따라 과목별 공부의 가중을 결정할 것이고, 이는 곧 기초학력의 불균형을 낳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순발력, 지구력, 근력과 관련한 기초체력을 각각 평가할 세 개의 체력평가 종목이 있는데, 두 종목은 경쟁에 의한 순위로 10등까지 1등급으로 정하여 상대평가로 측정하고, 다른 한 종목은 타당한 기준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등급이 30명 정도 나올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고 치자. 학생들은 절대평가 종목보다는 상대평가 종목에만 관심을 두고, 자신들의 기초체력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보다는 평가방식에 신경을 더 쓰게 될 것이다.
이런 평가방식의 차이는 결국 순발력, 지구력, 근력 등 기초체력 능력의 균형이 깨지는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기초과목과 관련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동일한 평가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수능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전체 교육과정을 통해서 배운 전체 교과의 역량을 균형 있게 평가하면서도 사탐과 과탐 과목을 통해 학생의 개별 역량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초과목군의 교과를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학생들의 기초 역량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놓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2018학년도 수능에서 이런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기초과목군의 다른 평가방식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학생들의 기초학력 불균형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과 부실로 인하여 일반 학생과 특권층 학생 간 영어 실력 격차가 더욱 커지고 사회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대입 시험방식의 개편과 결정은 우리가 바라는 인재 양성의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게 기초과목 간 교과의 핵심역량을 균형 있게 키우려면, 본래의 취지대로 관련 교과에 동일 평가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도 동일 평가방식 적용을 미루는 것은, 그 피해를 지속적으로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것이다. 아울러 현시점에서 영어를 포함한 모든 절대평가의 경우, 학생의 본질적 역량을 측정할 수 없는 모호한 기준의 쉬운 수능이 아니라, 기준이 명확한 절대평가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것만이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고, 균형 잡힌 기초학력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대안이다.
<홍선호 서울교대 교수 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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