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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한국 교육에서 가장 심각하게 무너져 있고, 그 때문에 한국 교육이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 밖에 놓인 교육영역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대학원 교육과 영·유아 교육 분야를 들겠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새로운 지식은 서구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산업계가 요구하는 고급인력의 최종 학력 수준이 대체로 대졸을 넘지 않아 대학원 교육은 과외의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영·유아 교육 분야 역시 산업계의 인력 양성 요구와 직접적 연관성이 약하고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과외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다매체와 사이버 세계가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오고 인공지능 자동화가 급진전되는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이른 시기부터 다매체와 사이버 세계에 노출되므로 영·유아 교육 분야가 교육의 입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사회적 격차가 심해지고 더 나아가 양극화되고 있어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향유하는 돌봄과 문화 수준의 차이가 크다. 이는 출발점에서의 인지능력과 학습 의욕의 차이로 나타나고 결국 출발점에서의 근원적 교육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 뇌의 90% 이상은 영·유아기에 형성된다고 하니 이 출발점에서의 근원적 불평등은 이후 극복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격차를 줄이고 최소한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여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하도록 구심력을 형성한다는 공교육의 근본 취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영·유아 교육 분야는 가장 우선적으로 국가재정이 투여되어야 할 영역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은 영·유아 교육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어 국가재정을 집중 투여해야 할 시기에 투자를 회피하고 영세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영·유아 교육의 균질성과 공공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교육의 출발점에서의 불평등이 심각해졌다. 게다가 영세한 민간 교육기관 참여자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다기하게 얽혀 있어 이제는 국가가 재정을 투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해결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영·유아 교육 영역은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개선이 어렵다.  

그래도 영·유아 교육은 대학원 교육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 우리나라의 지방 대학원은 이미 전반적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서울 유수 대학의 대학원도 직접적 효용성이 약한 기초학문이나 기본 콘텐츠 영역은 무너져가고 있다. 국가가 대학원 교육과 학문 연구에 지나치게 시장원리를 적용한 결과일 것이다.

친구 조카가 아인슈타인이 나온 스위스 대학에 유학하여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스위스에 남아 은행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오면 교수가 되는 것 이외엔 길이 없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뜻 물리학 전공자가 은행이나 로펌에서 일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세계를 상대로 하는 규모의 은행이나  로펌에서는 물리학 전공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기초학문이나 기본 콘텐츠 영역은 중국같이 자체 인구가 많거나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는 나라에서는 시장에서 성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기초학문이나 기본 콘텐츠 분야는 국가가 재생산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성립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5·31 교육개혁의 특징 중 하나는 고등교육에 시장경쟁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지난 이명박 정부 이래 이러한 경향은 극단화되었다. 당연히 기초학문 영역, 기본 콘텐츠 영역이 급격히 쇠락하고 대학원 교육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근래에는 한국문학 연구 등 한국학 분야마저 대학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미국에 가서 학위를 받아 와야 한다는 소리가 들리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초학문 영역, 기본 콘텐츠 영역이 무너지면 한국은 영원히 원천기술이나 원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대학에 투여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연간 5조6000억원 규모로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 방식으로 개별 교수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직접적 효용성이 큰 분야에 집중되는 문제도 있고 학문 연구의 재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효과도 별로 없다. 우선은 한국의 개별 대학이 대학원을 제대로 발전시키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은 만큼 적어도 광역권 단위로 거점 국립대 중심의 통합 대학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학문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일본 등을 밴치마킹하여 필요한 학문 연구 인프라를 갖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 교육은 입구와 출구가 무너진 집이다. 입구인 영·유아 교육이 무너져 불평등하게 기울어지고, 출구가 무너져 빠져나갈 곳이라고는 대기업, 공무원 등 좁은 구멍 몇 개뿐인 집안에서 참 절망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노작교육이라는 입구와 장인적 기술교육의 출구는 아예 제대로 만들어진 적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절망적인 경쟁만을 교육문제라고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입구와 출구를 제대로 세우고 창문도 시원시원하게 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진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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