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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교육 제도는 매우 치열하다.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시험과 시험 성적에 따른 분반, 초등학교 졸업시험 결과에 따른 중학교 배정. 그때부터 대충 가늠되는 진로와 미래. 중학교 졸업시험, 고등학교 졸업시험…. 싱가포르 학생들은 이런 과정들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학교에서 취업을 위한 전문기술을 배운다.

싱가포르의 치열한 경쟁 교육 제도 때문인지, 최근 싱가포르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는 매우 높다. 최근 몇년간 과학, 수학, 수리력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교육 시스템에 싱가포르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상적인 교육 제도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싱가포르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변화다.

싱가포르는 교육 시스템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논의되거나,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판단될 때 과감하게 변화를 이행한다. 그 한 예로, 너무 치열한 경쟁이 학생들에게 심각한 부담감을 준다고 평가위원회가 결론을 내리자 초등학교 1~2학년 시험을 폐지하기로 과감히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초등학교 시험을 모두 폐지하고, 좀 더 세부적으로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추진한다는 결정으로 발전했다. 내년부터는 일종의 성적표인 ‘HDP’(The Holistic Development Profile)에 석차, 집단 평균, 개인 평균 점수, 총점, 통과 또는 낙제 여부 등을 표시하는 지표도 삭제하기로 했다. 이러한 과감한 변화는 내가 싱가포르에서 9년 동안 싱가포르 교육 제도를 분석하면서 가장 부러워한 점 가운데 하나다.

또 한 가지 한국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실업계 학교의 증가다. 싱가포르에서는 조기에 실업계 학교에 입학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실업계 전문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혹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 폴리테크닉(Polytechnic)이라는 실업계 전문학교에 갈 수 있다. 이렇게 실업계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매우 높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2년 동안 전공을 선택해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후 심도 있는 학문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2015년의 경우만 해도 실업계 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3명 중 1명꼴이었다.

또 한 가지 우리와 다른 점은 대학 진학률이다. 싱가포르의 대학 진학률은 2017년 기준 약 30%다. 이는 최근 대학 수가 증가함에 따라 종전 16~20%에서 많이 올라간 것이지만,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70%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다.

한국의 일반고 진학률과 대학 진학률은 다소 높다. 나는 한국에서 실업계 학교가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술 습득에 대한 강조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중·고등학교 때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업계 학교를 적극 지원해야 하고, 실업계 학교에 대한 경시적인 태도가 있다면 이를 없애는 노력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싱가포르도 실업계 학교에 대한 경시적인 태도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업계 학교에 진학해 실질적인 기술 및 전문성을 습득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추후 더 심도 깊은 학문을 배우고 싶다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의견을 사교육 부문에서 거부할 수도 있고, 많은 대학에서 싫어할 수도 있지만 대학 진학이 절대적인 진로인 것처럼 사회가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에 대한 존중이 절실하다. 기술공의 지위가 높은 스웨덴 사회가 한 예이다. 기술을 습득하는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있고, 농업고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있으며, 젊은 청년 수선공이 대접받는, 그러한 다양한 사회가 건강하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미래에 다가올 수도 있는 북한과의 적극적인 상호 교류가 이루어질 때 더욱더 필요하리라고 본다.

아무리 4차 산업과 미래 기술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모든 기술은 기초 습득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기초과학을 강조했던 일본에서 다수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꾸준히 들려오는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질투어린 눈으로 보기보다는, 근본적인 이유 및 교육 제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국가의 교육 제도를 분석해 좋은 점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심하다 보면, 무쇠와 같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 교육 제도가 조금씩 변하게 되지 않겠는가.

<김혜진 |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정치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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