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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EBS 수능 연계 정책이 시행된 2004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년 성과 분석과 개선 방안 연구를 수행해왔다. 2016년 9월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고교생과 학부모 1만39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대부분의 고교생들이 EBS 수능 강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수능을 앞둔 고3의 96.5%가, 최상위권 학생 90.3%가 이용하고 있었다. 둘째, 사교육비가 크게 억제됐다. EBS 수능 강의를 시청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주당 사교육 시간이 적었고, 월평균 사교육비도 낮았다. 셋째,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 EBS 수능 강의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수능 연계 정책보다는 경제적 부담이 없어서 수강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읍·면지역 학생들이 타 지역 학생보다 회원 1인당 이용률과 수강률이 높게 나타났다. 넷째, 학생들의 학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EBS 수능 강의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 결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자기주도 학습능력 등이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도 통계청 조사를 보면 사교육비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EBS 강의를 열심히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은 애초부터 사교육을 하지 않았던 읍·면지역 또는 저소득층 자녀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사교육비는 처음부터 없거나 많지 않았기 때문에 EBS 강의를 수강한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들기는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EBS 수능 연계 정책은 교육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가 30명이 넘는 일반고 현황을 고려할 때, 교사 혼자서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수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교육환경에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읍·면지역의 학생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이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나 다름없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EBS 수능 강의의 교육 형평성 제고 효과는 연간 5800억원이 넘었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 고3 학생들에게 교과서 대신 EBS 수능 강의 교재를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있어 공교육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 EBS 수능 연계 정책은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한 ‘해열제’로 투여됐다. 그러나 그동안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않고, 이제 와서 해열제로 투입된 EBS 수능 강의가 잘못되었다고 트집을 잡고 있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고3 교실에서는 교과서보다는 민간 출판사 문제집을 활용했다. 다만 지금은 값비싼 민간 출판사 문제집이 저렴한 EBS 수능 교재로 대체된 것뿐이다. 연계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던 시기나 지금이나 사교육 과열은 그대로인데 해열제를 갑자기 끊어버리면, 소외계층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보조 교사를 배치하는 등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제도 개선 없이 EBS 수능 연계 정책을 폐지한다면 소외계층 학생들에게서 우수한 수능 강의 수강 기회를 뺏는 것이다. 이는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는 비교육적인 행위다.
정영식 |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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