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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입학과 개학의 계절이다. 신규 교사는 물론 경력이 꽤 되는 중견교사조차 새 학년, 새 학급을 만나기 전에 꽤 많은 설렘을 느낀다.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첫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첫 만남을 퇴색시키는 괴이한 격언이 있다. “애들은 3월 한달 동안 잘 잡아야 1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내가 젊은 시절 선배교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기도 하다. 심지어 “3월 한 달 동안 가능하면 웃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분도 있었다.

의미는 뻔하다. 학생들이 아직 교사의 본색을 파악하기 전에 이른바 ‘군기’를 잡아 놓아야지, 일단 한번 기어오르고 나면 다시 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디 학교뿐일까? 이 ‘3월에 꽉 잡자’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되어 널리 퍼져있다. 대학생들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대신 온갖 짓궂은 신고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힌다. 직장에서도 ‘사수’ ‘부사수’라고 하면서 신입 사원들을 거의 얼차려에 가까울 정도로 ‘갈군’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긴장한다. 수업 첫날을 맞이하는 학생들, 출근 첫날을 맞이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새로 만나는 선생님, 직장 선배, 상사를 마주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하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옳고 그름을 따져볼 여유없이 일단 복종한다. 이게 소위 말하는 군기가 잡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학습도 업무도 할 수 없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마음도 열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엄하게 내리는 지시, 꾸지람, 벌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은 그 자신도 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교육학의 정설이다.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사회 곳곳에서 신입들을 상대로 초반에 군기를 잡겠다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3월에 꽉 잡는 교실에서 헬조선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후배 그리고 동료 교사들에게 “1년 내내 눈 부라리고 꽉 잡고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3월에 꽉 잡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3월은 군기를 잡는 기간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불안을 달래어주는 시기다. 그중 더 불안한 쪽은 학생이다. 그 불안을 이용하여 공포에 빠뜨리는 대신 안심시켜주고, 교사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간이 3월이 되어야 한다.

물론 교사가 늘 다정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때로 엄히 꾸짖기도 해야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따끔하게 벌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선 학생들을 다정하게 맞이하고, 불안을 풀어주고, 사랑과 공감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사랑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꾸지람을 하고 벌을 주더라도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행동을 고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교육이다. 이렇게 사랑과 엄격함이 함께하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상사나 선배가 되었을 때 신입이나 후배들에게도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신입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선배나 상사가 하나둘 늘어날 때 불친절하고 차갑고 가혹한 갑질의 사회가 따뜻하게 바뀔 것이다. 의외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사회를 바꾸는 열쇠일 수도 있다. 그 실천을 한마디로 정리해 본다. “3월에 꽉 잡지 말자.”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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