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치 칼럼

[기고]야당의 오만

opinionX 2012. 6. 11. 22:00

최영찬 |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가 결국 학교에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분노를 누를 수 없다. 사전 승인을 받고 언론 기고나 방송 출연을 해야 한다는 KDI 현오석 원장의 위협은 학문의 자유와 지식인의 현실 비판을 송두리째 구속하려는 의도가 보여 묵과할 수가 없다. KDI가 정부 출연기관이고 국제정책대학원이 기관에 속해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현 원장의 발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다름없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진실의 편에 섰던 학자와 시민사회의 수난은 계속되어 왔다. 잘못된 무역협상과 운하를 반대하고,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며, 언론장악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불법적인 사찰이 행해지고, 학자들에게는 연구지원 배제 등 각종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듯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서, 내 주변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서글프게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날선 비판을 해 온 유 교수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자,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본때를 보이는 것’이라는 장지연 박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서다. 손학규 대표 당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을 맡아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반대하고, 1%의 소수 특권층만이 살찌는 경제가 아닌 99%의 국민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분배, 좋은 일자리와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과 정책으로 담아냈던 유종일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혁신과 야권통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정작 통합된 민주당에서 상식 이하의 불공정 공천으로 배제되었다.

 

설전 벌이는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들 l 출처:경향DB

그뿐이랴! 보편적 복지와 4대강 사업 및 한·미 FTA 문제 등에 대한 야당의 정책을 만들고 진실의 편에서 싸웠던 대표적 학자인 이상이, 박창근, 이해영 교수 등도 견디기 힘든 수모를 겪었다.

친노와 386의 전횡이라는 따가운 비난들이 쏟아져도 상왕공천과 아바타공천으로 국민의 질타를 받아도 나는 차마 민주당을 질책하기 어려웠다. 지난 4년간 모질게 겪었던 우리 사회의 과거 회귀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나라를 뒤로 가게 만든 세력들을 응징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어 다시 앞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바람에서다. 그래서 유종일과 양심적인 학자들은 공천 배제의 아픔을 딛고 9988유세단을 조직해 야권의 경제민주화 후보를 지지하며 전국으로 유세를 다녔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이길 것으로 자만하던 선거는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주며 야당의 참패로 끝났다. 이명박 정부 내내 진실의 편에 섰던 이들에게 총선 패배는 충격 그 자체이다.

총선 승리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정부·여당의 고압적인 자세와 양심세력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감내하기 어렵다. 유종일에 대한 징계, 파업 중인 방송사 노조에 대한 고소, 쌍용차 노조의 분향소 철거 등이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로 회귀하는 정부와 싸우다 지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이 공천 배제와 다시 시작된 탄압이라니!

이들의 실망과 고통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야당들은 그들만의 세력다툼에 빠져 쳐다보기도 민망하다. 국민들의 눈에 그들은 국회의원 자리와 자파의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망스러운 공천으로 국회에 들어간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오만은 하늘을 찌르고 그들의 경망스러운 언행은 국민들의 상처를 후벼 파고 있다. 그들이 부르짖는 대선 승리 방정식이 너무나 허황되고 억지스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오직 자신들만이 정의롭다는 그들이 언제쯤 국민을 보게 될까?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