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961년 5월18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기 위해 시가행진에 나섰다. 당시 육군 대위였던 전두환이 개입했다. 그는 교장 강영훈이 생도들의 지지행진에 반대한다는 것을 쿠데타 주모자들에게 알렸다. 강영훈은 구금되었고 그의 수하들은 행진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수년 전 육사를 졸업하고 영관급 장교까지 지내다 전역한 한 기업인이 그 사건에 대해 ‘육사 최대의 치욕’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은 바 있다. <제5공화국>이라는 정치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던 때로 ‘한국 정치사와 군’에 관한 이야기를 청해 듣던 자리였다. 그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했고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때는 군부 내부의 쟁투지이기도 했던 육군본부에서 근무했다. 이후 최전방 야전부대 지휘관을 지냈고 국방대학원에서 안보전략 공부를 했으며,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작전분야를 담당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미 동맹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도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군인의 삶을 자랑스러워했지만 노태우 정권 말기 군복을 벗고 자신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기업 활동에 뛰어들었다. 대권을 노리고 있던 유력 정치인 측의 스카우트 제의를 고사한 뒤였다. 어쩌면 기업보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도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기에 군인으로 살며 간직했던 지론을 고수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군인은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역을 해 민간인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정치에 대해서만큼은 군인의 미덕을 적용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정치군인들의 주도로 교장이 구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육사 생도들의 5·16 쿠데타 지지 행진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역사였던 것이다.

 

강기갑 위원장 "육사생도에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ㅣ 출처:경향DB

그에게 이번 전두환의 육사 사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뭐라 답할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평소 소식도 썩 부지런히 나누지 못하다가 암투병 중인 그에게 불쑥 세상의 논란거리를 들이밀며 답을 청하는 것이 결례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지론과 달리 군은 정치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정치학적 소견을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육사 졸업생들은 어찌하여 아직도 후배들이 국민을 학살한 군사반란과 내란의 수괴에게 사열을 하게끔 놔두었냐며 따져 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의 치욕을 반복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말이다.

하지만 묻지 못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육사 교장과 국방장관 혹은 육사 졸업생들에게만 있겠냐는 자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6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특히 그러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중요성과 방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의 책임은 없냐는 것이다. 군부독재의 경험에 갇혀 ‘좋은 군’의 양성이 민주화 이후의 또 하나 중대 과제임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군인이 갖춰야 할 정치관과 역사인식의 형성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묻게 된 것이다. 육사를 그저 안정적 취업을 위한 혹은 수능 성적에 맞춰 들어갈 또 하나의 대학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육사 교장과 국방장관, 육사 졸업생 등 직간접적인 관계자들은 군부독재 치하에서 억압받고 피 흘리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시에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는 그런 국민을 자랑스러워하며 지켜낼 군의 양성을 위한 적극적 관여를 시작해야 한다. 단, 이 과정에서 군의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를 적으로 대하면 진짜 적이 된다. 군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기강, 광범위한 통신 수단과 무기의 독점적 사용권을 보유한 강력한 조직이다. 군이 국민의 관여와 존중 속에 벗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