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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일 전후로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원숭이해’가 왔다면서 원숭이 관련 기사를 가득 올렸다. 양복 입고 갓 타령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원숭이띠와 양력은 전혀 관련이 없다. 120년 전의 병신년(丙申年)이었던 1896년 조선은 2종의 역서(曆書)를 발간했다. 하나는 ‘대조선개국오백오년세차병신시헌력(大朝鮮開國五百五年歲次丙申時憲曆)’이고, 다른 하나는 ‘대조선개국오백오년력(大朝鮮開國五百五年曆)’이었다.

전자는 전통의 음력이고 후자는 지금의 양력이었다. 공식적으로 서양의 순태양력으로 개력을 단행하면서 우리의 전통 역법도 병행한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두 가지의 역법을 유지하면서 해마다 적지 않은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음력과 양력은 매우 다른 역법체계이다. 양력은 순태양력인 데 비해 우리의 음력은 사실상 태음태양력이다. 음력은 크게 열두 달과 24절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은 달의 공전주기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태음력이며, 24절기는 태양의 황도(黃道·우리가 보는 태양의 궤도)를 24등분했으니 태양력이 된다. 이 두 요소를 합한 역법이어서 태음태양력이지만 서양 태양력과의 간편한 구별로 음력이라 일컬어온 것이다.

음력의 한 달은 합삭(合朔·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상에 올 때)일을 초하루로 하고 상현과 보름달 그리고 하현을 거쳐 다시 합삭이 될 때까지다. 달은 밤하늘에서 가장 쉽게 관측되는 시간의 좌표이기도 하지만 지구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한 달의 날짜를 통해 이러한 영향을 가늠하기도 하는 것이다.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은 보름이 다 되어가는 날짜를 보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최대치에 이르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테마 파크 '핫케이지마 시파라다이스'에서 바다사자 제이 군이 붓으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신'(申)을 쓰고 있다 _AP연합뉴스


다만 달의 공전주기로는 계절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황도를 기준으로 하는 24절기를 운용한다. 매달 두 절기를 넣는데 가끔 하나만 들어가는 달이 생겨 이때에는 윤달을 넣는다. 이렇게 해서 달과 계절을 맞추는 것이다. 절기마다 72후의 대표적인 변화를 알려주었다. 후(候)란 물후(物候)나 기후(氣候)를 의미하는데 한 절기에 셋씩, 즉 대략 5일에 하나씩 들어 있다. 24절기는 천문학적 관측의 결과이고 72후는 절기 따라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나 생태학적 관찰이다.

음력에서 한 해의 시작은 입춘(立春)일이다. 설날 1월1일은 정확하게 새해의 기준이 아니다. 입춘일은 황도 위의 한 위치이고 설날은 백도(달의 궤도)의 한 위치이기 때문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달력상의 정월 초하루이면서 아울러 입춘일을 전후로 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설날을 1년의 시작이자 봄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생물은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의 변화를 따르면서 한 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과정을 실현한다. 즉 봄이면 생물들이 생기를 받아 활력을 얻고 여름이면 왕성하게 생육활동을 한다. 가을이면 한 해의 결실을 맺고 겨울에 활동을 줄이거나 멈추면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음력은 이처럼 역법과 계절을 일치시켜 사람에게 때를 알게 하는 지표를 제공한다.

그러나 양력은 이와 다르다. 양력에서 1월1일은 단지 겨울의 후반일 뿐이다. 1년을 열두 달로 나누었지만 매달의 길이는 28일에서부터 31일에 이르기까지 들쭉날쭉하다. 모두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학은 날로 발달하지만 우리는 매우 비과학적인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아쉽지만 세계가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음력과 양력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왜곡해서는 안될 일이다. 세종대왕 때 ‘칠정산(七政算)’이 완성된 후 서울을 기준으로 계산한 일력(日曆)을 매년 동짓날에 간행 보급했다. 정조 때는 30만부가 넘었다 한다. 국가의 표준역서 제작 배포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긴요한 일이다. 모든 생물은 때를 알지만 사람들은 갈수록 날짜만을 안다.


김세환 | 부산대 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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