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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에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 평화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판문점선언 직후인 5월31일을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회담과 군사당국자회담이 열리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식목사업, 체육 교류 등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 보건의료 고위급회담이다. 이 시점에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어디 있으랴만 남북한 주민의 건강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금요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주관한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발전방향 심포지엄’에서는 놀랄 만한 남북한 보건 문제들이 발표되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 주민 중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95.6명에 달할 뿐 아니라 그중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57.1%나 되고, 결핵 신고 환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펀드의 지원 중단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이는 말라리아도 마찬가지다. 또한 홍역과 같은 질병의 유행도 예상되어 조기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감염성 질환 문제만이 아니다. 박상민 서울대 의대 교수는 북한이 높은 질병 부담에도 불구하고 경제 제재 등으로 보건의료 원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이 되고 있다고 했다. 충분한 기초 약제, 장비를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잠재역량이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질병 부담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한반도의 큰 짐으로 남을 것이다.

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새롭게 공개한 북한의 환경 문제 역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일부 남한보다 좋은 환경지표도 있지만 북한의 환경 문제도 도긴개긴이다. 특히 실내공기 오염, 공장지대 대기·수질 오염은 준재난적 상황이며, 남한 주민의 고통인 미세먼지 문제 역시 남북의 공조가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혜원 서울의료원 교수의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어제와 오늘’에 따르면 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은 고장 난 시계처럼 너무 오래 멈추어 있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 부문 고위당국자 회담이 시급히 열려야 한다. 일찍이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 당국자들은 우선적으로, 남북한 ‘감염병 유행과 재난 대비 핫라인’을 설치하고, 결핵·말라리아·홍역·조류독감·구제역 등 감염병 유행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또한 추진하다 중단된 어린이 예방접종 사업, 모자보건 사업 등 보건의료 부문 협력사업 재개도 다루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내 보건의료 담당부서 설치와 재난 대응 공조체계 구축도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교류 활성화에 따른 보건협정 체결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 보건의료협정에는 △남북 간 보건의료 정보 교환방식 △공동방역 협조체계 구축 방향 △상호 왕래자에 대한 의료편의 제공 방식 △남북 보건의료 전문기관 간 교류와 협력방안 △재난이나 응급의료 수요 발생 시 공동 협력방안 △보건의료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공동보조 및 협력에 관한 내용 등을 포함해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가장 안정적인 통로’이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또한 보건의료 부문이 가장 먼저 ‘안전한 길’을 내는 선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돈만 앞서는 남북교류가 되지 않도록 보건의료 부문이 번영과 사회안전망이 함께 달리는 두 개의 레일전략(Two rails strategy)의 견고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

북상 중인 장마전선이 중부지방까지 올라왔다. 평화의 시대가 시작된 만큼, 남북의 공조를 통해 이번만큼은 한반도에서 홍수 피해를 입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른 어떤 문제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양 부족과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린이들과 환자들을 먼저 살려야 한다. 우리가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신영전 | 한양의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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