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산책자]끝나고 난 후

opinionX 2018. 7. 2. 11:17

지난주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나고 난 후에 복기하면서 반성을 한다.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평을 받은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도서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전 세계 도서전 감독들의 모임에 출장을 다녀온 터라 걱정이 많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볼로냐, 보고타, 예테보리, 프랑크푸르트, 델리, 파리, 이스탄불, 프라하, 바르샤바, 과달라하라, 타이페이 등 여러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열릴 서울의 도서전을 함께 걱정해 주었다. 도서전을 한 주 앞두고 출장 온 것으로 ‘가장 용감한 감독’에 비공식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용감한 감독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독자들과 출판사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 마련된 ‘여름, 첫 책’ 코너에서 관람객들이 피크닉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세계 각지의 도서전에서 온 감독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의 사정들도 모두 달랐고 배울 것들도 많았다. 테헤란 도서전의 200만 관객에서부터 예테보리 도서전의 10만 남짓한 관객까지 다양한 숫자의 관객들이 자국의 도서전을 찾는다. 물론, 도서전을 찾는 관객 숫자와 도서전 내용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각국 현황과 사정을 듣고 나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게 많았던 도서전은 관람객 숫자가 비교적 적은 예테보리였다. 스칸디나비아, 혹은 노르딕 지역에서 가장 큰 도서전인 예테보리 도서전은 도서관 사서 3명이 시작했다. 이 도서전은 관객 숫자가 아니라 다른 숫자로 기를 죽인다. 작년을 기준으로 400개의 세미나와 4000개의 이벤트가 있었고 2800명의 작가가 도서전을 찾았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세미나가 50개, 이벤트가 300개였다. 몰래 다녀간 작가들이 제법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 숫자는 초라하지 않을까?

서울국제도서전을 준비하면서, ‘세계 4대 도서전’을 꿈꾼다고 이야기했다. 관심을 받아보겠다는 얄팍한 수였지만 진지하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으고 싶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머릿속에 그린 것은 단순히 관객이 많이 찾는 도서전은 아니었다. 국제도서전은 나라 사이의 저작권 거래가 중요하기 때문에 출판사와 전문가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어린이 도서전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볼로냐 도서전에 아이들은 특별한 허락이 없다면 입장할 수 없다. 한번쯤 가 보아야 할 곳으로 출판인들 사이에 손꼽히는 런던 도서전은 전문가들의 바쁜 발길을 제외하면 고요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주말만 일반 관람객을 받는다. 물론, 파리, 이스탄불 등의 도서전은 문을 열기 전부터 문 앞에 가득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그 열기는 저작권 거래를 주로 하는 도서전들이 흉내 낼 수 없다. 과달라하라나 보고타의 도서전은 라틴 사람들의 기질에 맞게 예술 축제를 겸한다. 흥겨운 춤, 노래, 공연과 함께 열흘 정도의 긴 축제를 즐긴다. 내가 상상한 미래의 서울국제도서전은 우리의 조건과 특징을 담고 희망을 실현한 어떤 것이다.

우리의 조건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출판 대국이고 교육과 어린이 책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문학도 점차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출판에 대한 통제가 강하고, 일본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서전을 2년째 열지 못하고 있다. 경제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고 그에 따른 출판의 성장이 두드러진 아시아의 저작권 거래의 중심으로 우리 도서전을 성장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만 모인 조용한 도서전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독자들과 출판사가 한자리에서 여는 축제의 성격도 한층 강화하고 싶다. 수천개 출판사들 중에서 이번에 참여한 출판사 숫자는 10분의 1이 안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여하는 7000개 회사들 중에 독일 국내 출판사 숫자가 3500개나 된다. 더 큰 축제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분야와 책에서 시작한 콘텐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특징을 살린 축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거기에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 독자들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가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에 ‘변신’해서 올해 ‘확장’했다고 순진하게 내년을 낙관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이후는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기원은 구텐베르크가 활자로 책을 찍으면서 생겨난 도서 시장이다. 7000개의 참가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예테보리 도서전을 개최하는 스웨덴 전시회사는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