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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에 ‘문어농부(問於農夫)’라는 말이 있다. 세종은 재위 7년이 되던 1425년 7월, 가뭄이 극심해지자 벼농사 형편을 보기 위해 호위군관 한 명만을 거느리고 서문 밖을 나섰다. 실제 민생현장을 둘러보니 상황은 궁궐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세종은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問於農夫). 궁궐로 돌아온 세종은 “금년 벼농사는 모두들 ‘꽤 잘되었다’고 말하였지만, 오늘 다녀와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세종은 직접 현장을 다니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경청했다. 이처럼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행정’은 과거부터 중요한 국정운영의 방법이었다.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행정 운영은 무엇보다 국민이 있는 현장과 밀접해야 한다. 우리는 현장을 도외시한 정책이 ‘탁상공론’이 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은 눈가림식의 대증요법에 그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특권의식 없기로 유명한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민감한 정책 문제에 대해 스스럼없이 토론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은 국민이 원하는 바른 법률과 정책을 만들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정부는 더 자주 현장에 가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전국 10곳에 ‘현장노동청’을 열었는데, 17일 만에 6200여건의 상담·진정·제안이 들어왔다. 이때 들어온 제안의 66%가 정책에 반영했고 진정의 82%를 해결했다. 이러한 현장행정의 성과를 토대로 올해는 2기 현장노동청을 운영한다.

정부는 직접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예컨대 아동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을 미성숙하다고 치부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당사자인 아동의 생각을 직접 듣고 존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28일, 전국의 초·중·고생 30여명을 초청하여 ‘아동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이들은 학교생활부터 교통, 환경문제까지 저마다의 생생하고 성숙한 목소리를 냈다. 이날은 필자가 그간 정책을 담당하며 생각하던 것과 아이들이 느끼는 것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한편, 좋은 정책과 서비스라도 다양한 사정으로 현장에서 국민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정부는 필요하다면 농민·자영업자 등 생업에 바쁜 분들이나 노인·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특허청이 수형자를 찾아가서 지식재산권 교육과 상담을 하는 사례, 충남 예산군이 농번기에 농민에게 민원서류를 배달하는 사례 등 찾아가는 현장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팬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이라고 한다. 멤버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활동뿐만 아니라 SNS와 개인방송으로 수요자인 팬들과 꾸준하게 소통해 온 덕분에 팬클럽 ‘아미’는 전 세계에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부의 행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수요자의 상황과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장을 확인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현장행정에 힘써야 한다. 최고의 정부가 되기 위해 ‘문어국민(問於國民)’ 하면서 조금씩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심보균 | 행정안전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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