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근 우리가 경험한 성장의 한계와 불안한 생활 및 부패 스캔들은 국부, 국질, 국격을 포괄하는 총체적 국가경쟁력의 위기를 시사한다. 따라서 난마처럼 뒤얽힌 사악한 문제를 풀고 재도약의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던 외국의 경험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세계 질서의 주도자임을 자처해 온 해양세력 미·일과 대륙세력 중·러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가생존을 위한 치열한 줄타기를 계속해 온 우리의 고단함은 흡사 중북부 유럽의 강소국들이 전후 표출한 분투를 연상시킨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은 영세중립과 균형외교를 표방하면서 자국에 부과된 시대의 소명에 부응해 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국가 존립의 위기마다 빛난 그들의 저력은 양차대전 이후 사반세기 동안 지속된 경제호황을 종식시킨 석유 위기의 충격은 물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아가 각종 국제기구나 대학의 국가경쟁력 순위발표에서 확고한 상위그룹으로 위상을 정립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성공신화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논리와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중립성과 투명성을 겸비한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이다. 현대 정부의 성패와 직결된 국민의 신뢰는 인접한 유럽 국가는 물론 영미나 동아시아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이때 중립성이란 정부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균형 잡힌 촉진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투명성이란 정부가 부정부패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중립성과 투명성에 기반을 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은 국민행복과 실용주의 정책기조를 강화시키고 있다.

둘째,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변수들의 대표성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격차 구조를 완화시켰다. 여기에는 계층간 분리현상을 치유하는 보편적 복지를 비롯해 지역대표성을 고려하는 연방제와 지방분권,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소수자를 제도적으로 배려하는 비례대표제와 약자 우대조치 등을 들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박애적 기풍은 공적개발원조의 활성화나 인종차별주의와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 성장과 분배, 개발과 보존 등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특히 경제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노사정 대타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기조를 채택했다. 일례로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근로와 복지를 연계한 유럽 각국의 개혁을 촉발시킨 선구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로 종합정부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사정을 비난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넷째,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 주변 강대국들과 차별화된 틈새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덴마크의 완구, 스웨덴의 가구, 스위스의 시계, 네덜란드의 물류 등을 들 수 있다. 더불어 바이킹이나 폴더스타일 개척정신은 외국인 투자유치나 해외시장 개척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섯째, 공멸을 회피하는 타협문화의 확산이나 거버넌스의 제도화를 추구해 왔다. 여기에는 공유지의 비극을 회피한 스위스의 공동목초지 관리규약이나 덴마크에서 일상화된 협동조합이나 자원봉사 활동이 포함된다. 특히 공공과 민간이라는 치열한 대립구도를 완화시키는 제3부문의 존재감은 거버넌스의 구현과 직결된 사례이다.

물론 중북부 유럽 강소국의 경험은 문화나 규모의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적 맥락에서 직접적 적용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은 한국적 발전모델을 재정립하는 지난한 여정에서 유용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부와 시장 및 시민사회가 보다 많은 숙의와 토론을 진행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