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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7장, 쇠못 1개, 2000개비의 성냥. 인체를 구성하는 성분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참 값쌀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같은 성분의 총합을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대우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이 같은 성분의 총합을 뛰어넘는 생명과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관한 대통령령(이하 ‘대통령령’)이 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원래 정부가 입법예고했던 대통령령안에 대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하 ‘피해자 가족들’)과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질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격렬히 반대했지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이 강행처리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특조위와 피해자 가족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과 특조위의 요구사항 10가지 중 7가지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즉, 많은 요구를 수용한 만큼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조위의 생명은 핵심 조사대상인 정부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조사대상이 되는 정부부처가 특조위에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면 객관적인 조사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이 필요 없다면 정부기관이 조사하면 되지 별도의 특조위를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해수부가 침몰 원인을 조사하고, 국민안전처가 구조구난 과정의 미비점을 조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이 특조위의 생명인데, 대통령령은 이 생명을 위한 내용은 완전히 빠져 있다. 정부부처로부터 파견된 공무원이 위원회의 업무를 종합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각 소위원회의 독립적 업무추진을 위해 각 소위원장이 해당 업무와 관련해 직원들을 지휘, 감독하게 해달라는 특조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수용한 요구의 가짓수만 들면서 많이 양보한 것인 양,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 양 색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명 없는 비누 7장, 쇠못 1개, 성냥 2000개비를 두고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정부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대통령령을 두고 제대로 된 대통령령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 할까? 정부와 독립된 위원회가 성립될 때 각 위원회에서 시행령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안하면 그 시행령안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해왔던 전례에 비추어 봐도 너무 괴이한 일이다. 감추고 싶은 뭔가가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5월11일 대통령령은 공포됐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대통령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의 결단으로 피해자 가족들과 특조위의 의견을 수용한 새 대통령령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특조위가 정부에 제출한, 피해자 가족들과 특조위가 모두 찬성하는, 그리고 정부도 그 내용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대통령령(안)이 있기에 특별히 시간이 더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특조위가 대통령령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진상규명과 그것을 위한 조사가 두렵지 않다면 전례에도 없는 괴이한 일들을 벌이지 말고, 행동에 나섰으면 한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회원들이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 통과를 규탄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어버이날을 맞아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카네이션을 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출처 : 경향DB)
최근 시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 특별법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부터 대통령령을 만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진상규명의 예봉을 무디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 모든 국민들 앞에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그 순간, 그 현장에 대통령이 범인의 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무 비극적일 것이어서 상상하기도 싫다. 국민들에게 비극을 목도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대통령은 결단해야 할 것이다.
박주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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