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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모씨가 지난 9일 사망했다. 이씨는 2001년 둘째 아이 출산 전후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14년째 각종 폐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달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와 질환의 인과관계 2차 조사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1단계 ‘거의 확실’ 판정을
받았다. 이씨 이외에도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 1차 조사 때 살아 있던 성인 피해자 1명이 최근 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정부 조사에서만 530명의 피해자와 140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대형 환경참사다. 최근 2명의 추가 사망
소식은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말해주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는 분명한데 가해자가 없다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인체에 안전하다며 판매한 기업도, 이를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제조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일부 합의가 이뤄져 소를 취하했거나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가능성 높음’ 이상인 1·2단계 피해자에 대해서만 제조사로부터 구상권을 통해 비용을 돌려받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작년 8월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3년, 살인 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 대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정이 이러니 피해자와 환경단체 등이 기댈 곳은 여론뿐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 항의 방문, 국내외 환경·노동단체 등과 함께 제품 불매운동 및 항의 서한 보내기 국제 캠페인, 광화문
1인 시위 등을 펼친다고 한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는 전체 1·2단계 판정 사망자 92명 가운데 71명이 사용해 가장 큰
피해를 낸 제품이다. 지난 9일 숨진 이씨도 이 회사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참사 원인이 밝혀졌는데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환경분야의 세월호 참사에 비유할
만하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기업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부는 지켜보고만 있는 꼴이다.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해 기업은 더 이상 피해자를 외면하고 법적 대응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도 방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국민 생명 보호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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