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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생 동안 소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을 한다. 그럼에도 소득이 단절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므로 이런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산업재해로 일할 수 없는 경우의 소득 단절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이 작동한다. 회사의 폐업이나 해고의 경우에는 고용보험이 작동한다. 질병으로 일하지 못해 소득이 단절된 경우에는 질병보험이 작동한다. 노령과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의 경우 국민연금이 작동한다. 이것이 공적 소득보장제도인 4대 사회보험이다.

영국의 사회보장 전문가 베버리지는 1942년 출판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4대 사회보험을 통해 ‘빈곤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전후에 존엄하고 문명화된 삶을 향한 사회권적 요구가 분출하면서 공적 소득보장제도는 1960년대까지 유럽의 모든 복지국가에서 확립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적 소득보장제도는 ‘실질적 보편주의’가 원칙이라는 점이다. 즉, 4대 사회보험은 대상자 모두를 포괄하는 ‘보편적 가입’과 존엄한 삶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 보장성’(소득대체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복지국가들은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 모두를 포괄하고 소득대체율 70%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적 소득보장제도는 ‘비정상’이다. 실질적 보편주의를 어겼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는 질병보험이 아예 없다. 질병으로 입원할 경우 치료비는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으로 평균 63%를 충당하지만 소득 단절로 인한 생계 위협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는 이런 위험에 대비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둘째, 고용보험은 노동자의 절반 정도만을 보호한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은 가입하지 않고, 자영업종사자는 아예 가입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급여 보장성도 매우 낮다. 셋째, 국민연금은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성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산재보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정상이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뜨거운 이슈로 공론의 장에 오른 것이 국민연금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60%였던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낮췄고,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 40%가 되도록 했다. 이건 두 가지 이유로 비정상이다. 첫째, 넓은 사각지대가 문제다. 노인의 3분의 1만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다. 앞으로도 60%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20~60세 인구의 절반이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가입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낮은 급여 보장성이 문제다. 명목소득 대체율 40%는 40년 가입이 전제인데, 열악한 노동시장으로 인해 실질소득 대체율은 23%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이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결국, 현재의 국민연금은 존엄하고 행복한 노후와 거리가 멀다.

국민연금과 달리 공무원연금은 사각지대가 없고 실질소득 대체율도 50~60%로 국민연금의 2배가 넘는다. 다만, 연금재정의 적자가 문제다. 그러므로 공무원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혁’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 수준으로의 하향평준화를 원치 않았던 공무원 단체는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 전반의 ‘비정상’을 개선하자고 제안했고, 여기에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그래서 5월2일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70년 동안 333조원의 재정을 절감하고,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재정절감분의 20%를 사용하고, 국민연금의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높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성사됐다.

이에 여야 양당 대표는 지난 6일 이런 내용과 함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무산됐다. 이에 야당은 합의파기의 배후로 청와대를 비난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명목소득 대체율 50% 합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보건복지부는 보험료 2배 인상이 필요하다는 괴담을 유포하며 부정적 여론몰이를 했다.

공무원노조 등 '여야 야합 공무원연금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 민주노총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실질적 보편주의를 결여한 국민연금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비정상으로 인해 보험회사와 기업들은 이익을 보겠으나 국민은 큰 손해를 본다. 첫째, 국민연금은 민간보험보다 수익률이 높고 더 효율적이다. 게다가 소득재분배 효과로 인해 보통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둘째, GDP의 2.6%로 OECD 평균 5.2%의 절반에 불과한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률은 늘어나지 않겠지만, 노동자와 국민의 노후는 불안하고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노후소득보장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연금 확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공적 소득보장제도 전반의 실질적 보편주의 실현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보통사람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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