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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국의 한 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상을 수상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한 수상자의 모습은 일반적인 수상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는 시리아의 구호단체인 ‘하얀 헬멧(The White helmets)’의 대표 라이드 알 살레. 제21회 만해평화대상의 수상자로 무대에 섰지만 손에는 휴대폰이 쥐여 있었고, 행사 내내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느라 그를 호명하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수상자로서의 예의가 아닌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의아해했겠지만 하얀 헬멧 대원들의 피살 소식을 접하고는 그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시상식장을 향해 가던 차 안에서 살레 대표는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괴한의 피습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하는데 이 피습으로 인해 하얀 헬멧 대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어느 날보다 기뻐야 했던 날이지만 살레 대표에게는 아픔의 날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며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살레 대표는 동료의 시신 사진이 전송된 휴대폰을 손에 쥔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은 총이 아닌 ‘들것’을 선택해 구조활동을 벌여 시리아인들에게 희망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수상 소감을 통해 분노나 절망, 포기가 아닌 희망을 얘기했다.

일정을 마친 살레 대표는 암살의 위험이 있다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급하게 시리아로 다시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는 하얀 헬멧의 대원들처럼 수많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다른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오는 19일은 유엔이 인도적 위기 해결에 힘쓰는 활동가들의 노고를 기억하기 위해 선포한 세계 인도주의의날이다. 인도주의란 절망에 빠진 일면식 없는 이웃을 위해 그들이 다시 인간다운 복리를 누릴 수 있도록 아무 조건 없이 돕는 것을 의미한다. 지진으로 집과 학교가 무너진 네팔의 고르카, 포격으로 초토화된 시리아의 알렙, 27만 난민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케냐의 다답캠프 등 전 세계 재난과 구호의 현장에는 평화와 희망의 물꼬를 트기 위해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굿네이버스와 같은 비정부기구(NGO)나 유엔 기관의 전문가들이 매일 땀을 흘리고 있다. 의료, 개발, 교육, 평화, 재건 등 인도적 사태 해결에 반드시 필요한 전문가인 이들 활동가는 안타깝게도 현지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초적인 치안과 사회시설이 무너진 현장에서 각종 위협과 사고를 직면해야 한다.

구호활동가 안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040명의 NGO 및 유엔 직원들이 재난 및 재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1973명이 납치를 당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이들 활동가의 도움 없이는 6560만명의 난민을 비롯한 재해와 분쟁의 피해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세계 인도주의의날은 전 세계 국가 및 시민들에게 인도적 활동가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 인도적 위기의 해결을 위해 참여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하는 날이다. 오늘 재난과 전쟁에 시달리는 지구촌 이웃들을 기억하며 보다 많은 청년들이 국제구호 전문가의 꿈을 키우고, 시민들이 난민 등에 대한 국제구호개발 사업에 후원의 손길을 내밀며, 정부가 재난지역에 대한 국제 공여기금을 확대하는 것을 희망해본다.

<성하은 | 굿네이버스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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