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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어머니는 종교를 여러 차례 바꾸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세 번인가 네 번이다. 삶이 늘 군색하고 고된 어머니에게 종교는 늘 기복을 위한 것이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신 가운데 어떤 신이 당신에게 궁극의 복을 가져다줄지 알 수 없어서 어머니는 여러 종교를 찾아 헤맸다. 덕분에 나도 여러 형태의 종교를 조금씩 구경할 수 있었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다가 무당이 뿌린 물벼락을 맞고 일어난 적도 있고, 파르스름한 스님들의 민머리와 하얗거나 검은 수녀님들의 미사포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기억도 있다. 등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네 작은 개척 교회 목사님은 우리가 이사를 하던 날 리어카를 끌고 나타났다. 작은 용달차를 불렀는데도 기어이 그 리어카에 낡은 가재도구 몇 가지를 옮겨 손수 끌고 옮겨주었는데, 동네 사람 보기 우세스럽다고, 오지랖도 별나다고 어머니가 많이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그 교회가 어머니의 최종 종교 정착지가 되기는 했다. 교회 자체는 이후에도 또 옮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곳저곳 옮기기는 했으되 어머니는 어느 종교든 허투루 복을 구한 적은 없다. 배운 사람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미신적인 방법이라도 당신이 믿어지면 복종했다. 무속을 믿을 때는 굿을 했고, 절에 다닐 때는 식구들의 이름을 바꾸었다. 교회로 옮기면서는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구약성서의 어느 구절에 놀라 그러라고 권한 사람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시장에서 선지를 사와 끓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제사도 없앴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제사지만 가난한 살림에 무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죽은 사람 모시는 거 아니라는 가르침이 그렇게 반가웠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으니 어떤 가르침은 종교와 무관하게 스스로 찾아낸 위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교든 어떤 위안이든 복을 구하는 일이었으니 시주나 헌금으로 대가를 치르는 일도 당연하게 여기셨다. 성미(誠米) 자루라는 게 있었다. 절에서 하는 시주에서 유래된 방법이지 싶은데, 밥을 할 때마다 기도미를 조금씩 떠서 따로 모으는 자루였다. 그 자루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종종 불화를 겪었다. 조상을 모시기도 무거울 만큼 가난한 살림에 교회나 절에 퍼주는 쌀을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식구들 잘 되라고 없는 살림에 조금씩 쪼개고 모아 드리는 기원을 헛돈 취급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는 서운했을 것이다. 요즘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니던 1980년대 가난한 동네 교회에서는 건축헌금이다 특별헌금이나 감사헌금이다 소위 어떤 목표를 위해 헌금하는 작정헌금이라는 게 유행했다. 그 작정을 해보는 게 엄마의 소원이었다. 그것만 하면 복 받을 텐데 늘 안타까워하다 어느 날 아버지 몰래 그 작정이란 걸 하기는 했다. 그래서 과연 복을 받았을까. 그건 모르겠다.

사정이 달라지기는 그때 그 작정을 주도했던 교회의 사정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 그때만 해도 변두리 동네의 개척 교회였는데, 지금은 재개발 호조를 만나 강남 대형교회 부럽지 않은 외용을 자랑하고 있다. 재산 가치가 비교할 수 없게 커져서 교회를 상속하는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소문을 건너서 들었다. 물론 그 교회는 운(?!)이 좋았다. 그 시절 그 동네에 있던 크고 작은 많은 개척 교회들 중 대부분은 재개발이 조성되던 시기에 함께 사라졌다. 같은 신을 믿었는데 왜 그들은 다른 결과를 맞았을까. 신앙의 크기가 달랐을까. 그건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겠지만, 기형적으로 성장한 대형 교회들마다 겪고 있는 내홍의 양상이 한결같이 불법 상속과 불투명한 회계 비리인 것을 보면 성장과 신앙은 무관한 것 같다.

종교 과세를 앞두고 종교계의 반발이 심해 보인다. 특히 개신교는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는 중이다. 과세 기준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은 무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정부의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신교가 오랫동안 신도들에게 믿음의 기준으로 주장해왔던 십일조 방식의 과세는 어떨까 싶다. 다 내놓을 필요 없다. 가이사의 것만 가이사에게로 내놓으시라. 예수님도 그건 돌려주라 하셨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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