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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책을 집행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정책결정권은 위원회에 있다. 정부 위원회 숫자만 해도 536개에 달하고 법에 근거하지 않더라고 부처가 사안에 따라 위원회를 신설해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아지는 추세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역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거쳐 수정될 정도이니 형식적으로는 자문에 그치는 위원회라 할지라도 영향력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위원회 확대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책결정을 대행하면서도 정작 책임은 물을 수 없는 구조에 있다. 개인정보보호라는 장막에 가려져 중요한 사항에 결정권한은 행사하지만 책임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다.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대한 제재심의를 담당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우 전·현직을 막론하고 위원명을 모두 비공개로 하고 있다. 물론 현행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될 경우’ 비공개 대상이다. 더욱이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담당하는 외부위원이 노출될 경우 업계의 로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가 20일 국회에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구성 계획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구글링을 통한 검색만으로도 비공개 대상인 일부 외부위원을 찾아볼 수 있다. 외부위원들도 신분노출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과거 비공개 대상인 제재심의위원 A교수, B교수, C연구위원은 각각 학교 홈페이지 프로필, 출판물, 토론회 패널소개 자료에 ‘제재심의위원’을 버젓이 밝힌 바 있다. 심지어 비공개 대상 위원을 다른 부처에서 공식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구에만 기계적으로 비공개라고 할 뿐, 공무원도 해당 위원도 신분노출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심사나 제재를 결정하는 위원들에게 접근하지 말아야 할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명단 비공개가 낮은 울타리에 그치지만, 정작 위원회의 결정을 분석하고 이를 감시해야 하는 시민단체들에는 높은 벽이 된다. 허울뿐인 명단 비공개는 책임회피의 방편일 뿐이다. 차라리 명단을 공개하고 내린 결정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당초 취지를 더 잘 살릴 것이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위원에 대한 로비나 협박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김영훈 |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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