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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 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은 종교와 종교지도자의 진정한 사명을 새삼 일깨워준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따르면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끝난 뒤 제의실에서 세월호 유족과 학생들을 따로 만나 충격과 슬픔을 위로하며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교황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낮은 곳의 사람들’이 대거 천주교 측의 초대를 받아 참석한다. 평소에도 바티칸 쓰레기 청소부들을 초청하고, 무슬림 여성과 장애인들의 발을 씻겨주며, 자신의 생일에는 외국인 출신 노숙인들을 불러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교황 특유의 ‘낮은 곳 행보’가 한국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구호시설을 방문, 환영나온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다. _ 연합뉴스


약자와 빈자를 기꺼이 가슴에 품는 교황의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은 왜 한국 사회의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도들에게 거둔 돈으로 호화롭기 짝이 없는 초대형 성전을 짓는 데 열을 올리고, 교회를 자신의 사유재산인 양 자식에게 물려주며, 국가기관의 불의와 폭력을 고발하고 맞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등 이 땅의 대표적인 종교기관들이 저지르는 반종교적 일탈행위는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종교지도자들은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과오를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받는 이들을 보듬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황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껴안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정책적인 해결방안은 결국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제시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재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제정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교황의 이번 방한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갈등이 슬기롭게 해결되고,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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