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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주, 민주, 통일을 우리 시대의 과제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를 주장하는 정치인에게 ‘내란음모’의 모자를 씌워 감옥으로 보내고 이를 주장하는 정당은 위헌정당이라 해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분단시대의 법정에 선 피고인은 제가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이석기 의원의 최후진술을 들으며 저는 해방정국에서 통일된 나라를 소망하신 몽양 여운형 선생, 조봉암 선생,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 지난 70년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권력에 의해 무참히 돌아가신 많은 분들을 기억했습니다.

특히 죽산 조봉암 선생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와 맞섰고 해방 이후 진보당을 창당하고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주창하다 이승만의 지시로 진보당은 해체되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959년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52년 만인 2011년 1월20일 무죄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저는 이석기 의원이 한국현대사 70년의 역사와 정치가 만든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당시 한국의 민중들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실현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40여 년간 일제와 야합하여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동포들을 천대하고 괴롭힌 친일파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온 겨레의 당연한 소망이었습니다. 더불어 농지를 중심으로 식민지 수탈에 앞장선 무리들을 처단하고 농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조선의 인민들은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형태의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전체 인민들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당시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친일의 대가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친일파와 이승만 일당이 야합하여 좌우 이념 대립을 조장하고 독립운동가들과 애국지사를 탄압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대한민국을 강제로 점령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분단을 정당화하고 민중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친일독재 잔당들 그리고 박정희 유신독재 졸개들과 치열한 투쟁을 통해 이룩한 미완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념 갈등을 넘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강한 신념과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석기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했다면 자신이 법정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지난 70년간 이어져온 독재 권력의 이념갈등 조장과 정치탄압을 비판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재’는 정치권력 안에 늘 상존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 권리가 권력에 의해 무단히 침해당하거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거나, 삶의 가치가 훼손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정권을 독재라고 규탄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을 기초로 법체계가 구성됩니다. 그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개인에게 보장된 양심과 사상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 이석기 의원을 감옥에 가두었으며 이 엄연한 사실이 지금 정권이 독재정권이라고 비판받는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가치판단의 기준, 정치체제에 대한 선호, 비판의 자유, 종교 선택의 자유 등 지극히 내밀한 개인적 판단에 대해 국가는 어떠한 이유로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 무한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준입니다. 이석기 의원의 가치 판단에 대해 누구나 비판하거나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 또한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석기 개인의 양심과 사상에 대해 국가권력으로 통제하고, 간섭하고, 처벌하려는 부당한 행위는 민족과 민주주의를 탄압해온 친일과 군부유신독재의 산물입니다.

항소심 법정에 앉은 이석기 의원 (출처 : 경향DB)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법정 심리가 진행 중이라는 기사와 함께 재·보궐선거가 끝난 후 언론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가 미미하여 그 존속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암울한 전망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기사 내용에서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체념하고 있거나 정치 발전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정치가 변화하고 그 변혁의 힘으로 불평등과 차별이 해소되고 복지국가와 경제정의가 실현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제도와 선거제도는 수구 양당체제를 강화하여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패배는 정치의 독점 구조가 만든 인위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민주, 새누리 양당 구도를 해체하기 위해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혁신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참민주주의, 새정치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개인적 신념과 가치가 존중받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이석기 의원과 일곱 형제들의 무죄 석방을 위해 기도합니다.


함세웅 | 신부·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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