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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도둑놈이에요!” 세금을 화제로 올리자 어느 자산가가 보인 반응이다. 그가 설명하는 이유는 이랬다. 국가는 고생해서 모은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어가는 데 혈안이다. 반대로 납세자들은 세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내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린다. 또 국가로부터 돈을 지원받는 사람들은 갖은 비위를 저지른다. 결국 모두 똑같이 ‘도둑’이라는 거다. 그래서 그는 증세에 절대 반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생각이 지극히 예외적인 것일까?

복지국가 하면 떠오르는 국가들이 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이다.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는 어떻게 해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흔히 언론 등을 통해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인 것으로 간략히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우리도 세금을 올리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현 정부의 증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당장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으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우리도 세금을 올리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 전에 우리가 과연 스웨덴 수준으로 세금을 올릴 수 있을지를 먼저 물어야 함이 옳다. 그럼 스웨덴 수준이 되기 위해 얼마나 세금을 더 내야 할까? 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덴마크가 45.8%, 스웨덴이 33.6%, 한국은 18.5%다. 좀 더 현실감 있는 통계수치로 근로소득자의 순평균세율(NPATR)이란 것이 있다. 순평균세율이란 근로자가 부담하는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의 합에서 보조금을 뺀 값을 총급여액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평균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자녀가 없는 근로자의 순평균세율은 2017년 기준으로 덴마크가 35.8%, 스웨덴이 25%, 한국이 14.5%다. 우리가 스웨덴 수준으로 세금을 올리려면 각 개인이 얼마나 추가적으로 더 부담해야 할지 딱 부러지는 금액을 내놓을 순 없지만, 앞의 자료들을 통해 대략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내야 하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앞서 언급한 자산가의 생각을 제치고 지금보다 세금을 두 배 정도 기꺼이 내놓을 의향이 있는가? 이 대목에서부터 온갖 반목과 갈등이 일어난다. 가령 증세는 찬성하더라도 정작 자신은 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거나,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조금이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터다. 큰 세제 변화가 낳는 조세저항은 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셌다. 굳이 인류 역사에서 세금으로 비롯된 반란이나 전쟁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까이 참여정부 때의 종합부동산세 파동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스웨덴, 덴마크는 되고 우리는 안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우리와 차이 나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신뢰’다. 수많은 국내외 연구와 관련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덴마크 국민들의 자국 정부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최근 OECD 발표에 따르면 국가신뢰도에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다. 한편, 부패정도를 매기는 2017년 CPI 국가별 지수에 따르면 덴마크는 2위, 스웨덴이 6위로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들 축에 속한다. 한국은 폴란드, 라트비아, 체코, 르완다보다 낮은 51위다. 굳이 이런 자료를 꺼내 들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지금 사립유치원 비리문제가 온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이는 혈세낭비의 지극히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국고 낭비 사례는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차고 넘친다. 과세행정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많은 자산가들의 탈세 노력은 눈물겹도록 치열하지만 탈세에 대한 법의 심판은 준엄하지 못하다. 국회의 문제와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거둬 간 세금이 적재적소에 쓰이고 제대로 관리되는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지갑을 선뜻 더 열 사람들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앞의 자산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신뢰사회가 먼저 확립되지 않는 이상, 조세저항을 넘어선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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