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간은 태초부터 유희를 즐기는 동물이다. 그러다보니 나라마다 놀이문화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오늘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든 예술 활동은 한 가지 전제조건을 요구하는데, 바로 무대와 관객 또는 독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영화의 하나인 <한공주>가 국내보다 나라 밖에서 먼저 알려져 국제 영화제에서 8관왕을 수상한 데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소재가 실제 한 여중생의 집단 성폭행을 그린 영화로, 극도의 좌절과 절망감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잃지 않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가치발견을 주제로 내세운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쓰라린 아픔과 상처를 딛고 세상에 대한 증오의 사다리를 끝까지 오른 주인공, 비로소 자신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그 증오의 이면 뒤에 한 맺힌 삶을 한 송이 눈부신 꽃으로 피운다는 내용이다.

영화 '한공주' 포스터 (출처 : 경향DB)


상을 휩쓸었다고 일회성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한류바람이 대중가요 인기까지 이끌어냈고 영화와 뮤지컬 등도 해외에 진출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짧은 단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저력을 높이 사기에 앞서 아직도 미약한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문화예술의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아직 정권 임기가 많이 남아 있어 속단하기는 이른 감도 있지만 정부는 이번처럼 특별한 작품을 통해 대외적으로 놀랄 만한 성과가 있을 때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 나라 종합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 문턱의 잣대는 그 나라 예술 수준이 그 나라 발전의 바로미터다. 한 나라의 예술은 부가적인 시너지 효과로 국가적 위상을 격상시키는 일을 담당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문학의 해외 번역 작품을 살펴보면 10여권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이 영어열풍에 휩싸인 나머지 도심을 나가보면 마치 외국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우선 거리의 간판들을 보자. 온 천지가 영어간판들로 어우러져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분명 우리말이 영어가 아닌데 그럼에도 영어발음을 그대로 한글을 이용해 사용하고 있다.

말은 또 어떠한가. 언제부터인가 ‘웰빙’이니 ‘헬스’니 ‘힐링’이니 국민들도 그것이 내 나라 말인 양, 영어를 한글처럼 쓰고 있다. 우리 언어의 DNA에 어느새 영어 DNA가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문학 작품은 해외에서 번역활동이 미비한 관계로 외면당하고 있다. 외국어 영역의 폭이 넓어져 보편화된 이 시대에, 어찌 문학작품에 대한 해외 번역 작가의 양성이 부족하도록 방치해 두고 있단 말인가.

단지 예술이 인간을 만드는 근본적 매개물로만 봐달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 특히 문학은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와 참된 가치적 존재를 깨닫게 하는 또 하나의 매개체인 만큼, 당연 높이 평가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책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예술 활동의 목적이 인간이 살아 존재하는 의미를 더 넓게 고루 펴주자는 데 있다면 예술을 통해 얻어지는 삶의 가치는 메마른 인간의 삶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어떤 거국적인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다양성 있고 유희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환경과 배경을 세상 밖의 무대 즉, 세계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가로 가는 길목임을 새겨 두어야 한다.


김종보 |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