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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째날 영화관에 간 것은 육십 평생 처음이다. 그렇게 서둘러 간 이유는 <그것만이 내세상>(그내)에서 서번트증후군이란 이해하기 힘든 천재성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폐성 발달장애인에게 천재성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레인맨>보다 뛰어난 정말 좋은 영화이다.

<레인맨>은 서번트증후군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 하지만 그내는 서번트증후군을 피아노를 통해서만 표현하여 천재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악보를 볼 줄 모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머릿속에 악보를 입력시켜 피아노 건반과 유희하듯 행복하게 연주하는 주인공 오진태는 우리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그내는 자폐성 발달장애인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 가정 문제를 잘 드러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동기를 아버지 폭행으로 공포스럽게 보내며 주먹을 사용하는 복서가 되고, 40살 가까이 되도록 거처할 곳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런데 여기에 장애인 가정 문제를 첨부하였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발달장애 아들을 위해 엄마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장애아 부모 소원이 장애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이지만 엄마의 소원은 무참히 깨진 것이다. 엄마는 큰아들을 버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큰아들에게 동생을 보살펴달라는 부탁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죽으면 진태는 시설에 갈 테니 가끔 찾아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만 봐달라는 유언을 한다.

친형제들도 장애 형제를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그 유언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내 마지막에 형이 동생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장면이 있어 엄마의 유언이 지켜질 것이란 따스한 안도감을 준다. 그내는 <말아톤>이나 <맨발의 기봉이> 같은 장애인 영화가 아니다. 그내는 상처투성이 가족이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족 영화이며, 절단 장애를 갖게 된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집주인의 고3 딸이 진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받아들여줘 인간의 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착한 영화이다.

2013년 방영된 드라마 <굿닥터>도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이 외과 의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방영 당시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굿닥터>가 2017년 미국 ABC방송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지난해 미국 드라마 부문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 1위를 기록하였다. 평론가들도 <굿닥터>를 선물과 같은 드라마라고 호평하였다. 이제 전 세계가 착한 스토리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내 같은 영화에 이병헌이라는 세계적인 스타가 등장하며 착한 영화의 서막을 열었다.

<굿닥터>나 <그것만이 내세상>을 만들어낸 우리나라는 착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예술을 가족 문제로 잘 녹여낸 그내가 2018년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다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 장애인예술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2018 평창 장애인올림픽에는 그보다 더 착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착한 영화, 착한 올림픽으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줄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선하디선한 착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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