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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벌인 만행에 공분이 쏟아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 말고도 무수한 ‘양진호들’이 버티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4일 공개한 제보들을 보면 폭행, 준폭행, 악질폭언, 황당한 잡무지시 등 ‘양진호 갑질’이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주유소 경영자는 직원에게 밥을 짓도록 하고 텃밭에서 막노동을 시키는가 하면 휴일에 출근시킨 뒤 3분 늦었다고 폭언을 했다고 한다. 직장 상사가 커터나 소주병으로 위협하거나, 부하 직원의 옷에서 생리대를 꺼내 흔들며 모욕을 주는가 하면 목을 조르는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대한민국 일터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출처:경향신문DB

직장 내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고질화된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위계질서가 큰 원인일 것이다. 피해를 입더라도 저항이나 폭로를 금기시하는 내부 분위기를 거스르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갑질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현행 법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도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폭언이나 엽기 갑질은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가 입원 치료를 받더라도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 폭언과 모욕을 못 견디고 그만둘 경우 자발적 퇴사로 분류돼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억울하고 분해도 상사의 갑질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조현민 물컵 갑질’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인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 개정안이 발의돼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일부 의원이 제동을 걸면서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해 사업장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노동법이나 캐나다 퀘벡주의 노동기준법 등 외국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이번 법개정안의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결코 모호하지 않다. 더구나 프랑스 노동법과 달리 이번 개정안은 가해자에 대한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조차 없는데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갑질사건이 드러날 때마다 여론이 들끓지만 그때뿐이다. 그저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을 명확히 규정하고, 대응을 제도화하지 않는 한 ‘양진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봉건적 ‘일터 야만’이 횡행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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