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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양심수를 지원하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촛불’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촛불은 양심수에게는 단순한 스탬프의 그림이 아니라, 불안과 어둠을 밀어내는 ‘희망과 정의’의 상징이다. 지난 ‘촛불혁명’도 폐쇄사회를 청산하고 보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적폐척결을 둘러싼 현 정권의 대응을 보면, 촛불정신과 동떨어진 무책임한 자세가 드러나고 있다. 국내 원자력학계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내 관계자 간의 연결고리가 인맥 및 학맥으로 굳게 얽혀, 연구항목 및 연구비의 배정까지 핵마피아의 핵심인물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곪을 대로 곪은 상태’가 계속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진행 중인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개발 사업이다.

시민들의 오랜 항의로 지난 국회에서 사업의 문제점들이 명백하게 지적되었지만, 현 정권은 직접 당사자인 과기정통부에 ‘셀프 검증’을 통해 사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해괴망측한 대응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관계자가 오히려 ‘적폐를 조장하는 장본인’이라는 지적조차 나오고 있다. 이 연구·개발 사업은 일부 핵마피아가 관련 정보를 독점한 채, 실효성도 없는 무모한 연구를 장밋빛 낙관론으로 치장하여 지난 20년 동안 약 6800억원의 혈세를 낭비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당사자인 과기정통부에 계속적인 사업 추진 여부의 결정권을 맡기는 현 정권의 안일한 대응은 할 말조차 잃게 만든다.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이라도 이런 황당한 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조차 들 정도이다.

지난해 12월 말 과기정통부는 사업의 지속 여부을 검증하는 ‘재검토위원회’의 구성으로, 찬반 양쪽의 의견을 듣는 방식을 정했다. 한편 반대 측 패널은 참가조건으로, 과기정통부의 셀프 검증체제, 재검토위원회의 적격성 확인 및 공정성·투명성의 부족, 과기정통부와 연구원의 비밀 대책회의 개최 등과 같은 문제점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의 일방적인 거부로 반대 측 패널은 1월11일의 재검토위원회 참가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1월22일 과기정통부 장관과의 중재(?) 면담에서 사업의 검증 전 ‘자체 감사 실시’를 요구했으나, 장관은 관련 공무원들의 ‘성선설(性善說) 주장’으로 넌지시 거부하는 한편, 오히려 반대 측 패널에게 현행 재검토위원회에 참가하여 줄 것만을 강조하였다.

이 연구·개발은 세계 어디서도 과학적으로 실증된 것이 아니며, 그저 온갖 가정 위에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핵마피아의 희망사항만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결과를 무시한 채 약 20년간 국민 혈세를 등쳤고, 또 계속하려는 이유는 첫째 단기적인 성과물이 없어도 장기적 연구라는 핑계를 앞세워 ‘기득권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점, 둘째 투입비용의 증가에 따른 거대한 매몰비용의 손실론을 앞세워 반대론을 견제하면서 핵마피아의 먹거리를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점, 셋째 미국도 자국의 연구비 부족을 메워주는 한국의 개발사업을 거부하지 않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카터 정권 이후, 미국의 재처리·고속로연구 개발비는 축소되는 추세였다. 특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도 1980년대의 미 아르곤국립연구소(ANL)의 연구를 답습한 것으로, 도입 시에도 과학적 근거보다는 ANL의 한인 연구자(퇴직)와 국내 핵마피아의 핵심 인물과의 개인적 친분이 우선적으로 작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현 정권은 건식재처리를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언어조작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면서 약 70년이 지나도 상용화의 가능성조차 없는 고속로의 개발사업을 묵인 및 추진해 온 과기정통부의 인적쇄신은 물론, 특히 청와대 관계자의 비합리적 처사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촛불정신을 외면한 채,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불성실하게 대응한 청와대 관계자는 ‘자질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는 만큼, 엄중히 문책해야 할 것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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