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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고양 가와지볍씨가 약 5020년이 지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쌀은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오천년 역사와 함께해왔다.

흰 쌀밥은 풍요와 부의 상징이었으며, 기쁜 일이 있으면 떡을 해 먹고, 쌀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드는 등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또한 속담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등 쌀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이는 쌀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우리 민족의 마음에 정서적·문화적으로 녹아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최근들어 쌀이 우리 식생활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으로 30년 전인 1987년의 126.2㎏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하루에 169g을 소비한다는 것인데 밥 한 공기를 100g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를 먹는 것이다.

출처: 정지윤 기자

상황이 이러다보니 매년 쌀이 남게 되고, 정부와 농협은 쌀값 지지를 위해 시장격리, 생산조정제 등 공급량 조절에 힘써왔다.

물론 ‘아침밥 먹기 운동’ 등 수요 확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변화하는 소비자 욕구에 맞는 상품을 내놓기보다는 ‘한국인은 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정서적인 호소에 기댄 측면이 적지 않다. 요즘과 같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건강·기능·간편을 지향하는 시대에는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협은 ‘쌀=밥’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쌀 소비 촉진의 실마리를 가공식품에서 찾아보고자 지난 7월 오리온과 합작으로 밀양에 쌀가루 공장을 준공했다. 농협에서 국내산 쌀과 농산물을 공급하고 오리온의 가공기술을 활용해 쌀스낵과 그래놀라, 쌀파스타 등 간편대용식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국수, 빵 등에 밀가루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쌀가루를 생산해 식품회사와 제과점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연초 81개 업체에 샘플을 제공했는데, 20여곳에서 호평을 받으며 이미 310t을 공급했다. 앞으로 올해 말까지 2400t을 생산하고 2022년에는 5만t까지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발효소스 등 쌀을 원료로 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것이다.

필자가 직접 우유와 팥빙수에 그래놀라를 넣어 먹어보니 영양은 물론이고 기존의 시리얼보다 식감과 맛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쌀가루로 만든 제품을 늘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누어 드리고 있다. 드신 분들의 반응이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서 믿을 수 있고, 맛도 좋다고 하시는 걸 보니 농업인을 위해 좋은 상품을 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쌀 소비가 확대되어 국민 1인당 밀가루 소비량(33㎏)의 30%만 쌀로 대체되어도 연간 50만t의 추가적인 소비가 가능해져 과잉 재고 해소는 물론, 쌀가격 안정화를 통해 농가소득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18일은 ‘쌀의날’이었다. 쌀 미(米) 자를 분해하면 ‘八·十·八’인데, 한 톨의 쌀을 생산하려면 농부의 손길을 88번이나 거쳐야 한다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 따스한 밥 한 공기의 모습이든, 쌀가루로 가공한 제품이든 쌀에 담긴 영양과 농업인의 88번 정성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 첫걸음을 뗀 쌀 가공식품에 대해 5000만 국민들의 관심을 기대해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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