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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 등이 추진해온 초·중·고등학생 대상 모의선거를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불허했다. 선관위가 밝힌 불가 사유의 핵심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모의선거 결과는 총선 다음날인 16일에 공개된다. 공개도 안된 모의투표 결과가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청소년 참정권 취지 중 하나인 민주시민교육을 훼손하는 처사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편협하고 정치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인데, 선관위는 대한민국 교사들이 그렇게 경우 없고 형편없는 사람들로 보이는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53만여명이나 되는 청소년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관위는 청소년의 참정권 교육을 확대하고 선거에 임하는 방법 등을 담은 모의투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오히려 앞장서서 제시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도리어 18세 유권자뿐만 아니라 아예 초등학생까지 포함한 청소년 전부에게 모의투표의 길을 불허했으니, 이는 세계사적 흐름을 도외시하는 시대착오적 오판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투표지원법(HAVA)’에 따라 청소년들의 모의선거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및 여타 다른 선진국에서도 청소년들이 실제 출마 후보들을 두고 그 공약 등을 분석해 보면서 모의선거를 해볼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도 선관위가 모의선거를 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관위는 모의선거를 교육이 아니라 정치행위로 보는 듯하다. 

교과서 안에만 머무는 죽은 교육이 아니라 청소년이 직접 투표를 체험하는 모의선거는 그 어떤 교육방법보다 효과가 높은 민주주의 교육이다. 선거에 무관심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발함으로써 투표율을 높이고 성숙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의미도 크다. 

그런데 정작 선거권은 주고 선거교육은 하지 말라니, 투표는 하되 눈 막고 귀 막고 투표하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관위는 선거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시민의 참여와 권리 행사를 향상시켜야 할 능동적 의무를 망각하고 오로지 제재와 관리적 입장에서 권위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선관위는 지난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의선거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해석 여하에 따라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는 과도한 불안과 지레짐작성 판단으로 유권자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일각에서 학교와 교실이 정치판으로 전락해 혼란을 야기할 거라는 근거 없는 우려를 쏟아내지만 청소년들은 되려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해 바른 일꾼을 선출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미성숙한 존재는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들일지 모른다.

<이영일 |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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