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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최저임금안이 지난 7월14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올 상반기 내내 이견과 갈등의 중심에 있던 최저임금 이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다양한 후속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계와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모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은 OECD 최고 수준이며, 학계의 연구들에 따르면 임금 불평등이 가계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여 내수 확대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 최저임금은 핵심적인 전략이다.

다만, 최저임금은 매우 강력한 정책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꽃인 가격을 조정하여 전국적 표준을 설정하는 정책이다. 2000만 임금노동자의 거의 25%인 500만명이 직접 적용 대상이 되고 700만 자영업자들도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

가격정책은 물가, 수요, 생산성, 복지지출, 구조조정 등에 매우 광범위한 효과를 가져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 세번째)과 함께 청년 구직자, 경력단절 여성, 편의점 점주 등 퇴근길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의 퇴출과 저숙련 인력의 일자리 기회 축소라는 구조조정 효과가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기쁨과 환호, 분노와 좌절, 갈등과 대립의 과정이다. 90%의 승자보다 10%의 패자가 정치를 지배한다. 고통의 한계비효용이 쾌락의 한계효용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격정책의 부담이 크다면 소득정책의 결합과 보완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숙련 계층의 일자리 상실과 실업을 과도하게 유발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늦추고 소득보장정책으로 보완하는 것이 좋다.

2017년 사업주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을 3조원 지원한 것이나 근로자를 지원하는 근로장려세(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4조원 규모로 확대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근로장려세는 최저임금의 대체재 성격의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근로장려세 수혜자일 수 있다.

일종의 구조조정펀드인 일자리안정자금을 한시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좀비기업 과잉과 존속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자영업 감소 속도를 보면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또한, 근로장려세가 차상위 계층 대상 정책이기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 기회조차 어려운 가계소득 최하위 10%의 빈곤층에 대해서는 또 다른 소득보장정책이 필요하다. 기초연금 조기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최저임금의 계층별 효과를 고려하여 소득보장정책의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그러나 소득 보장 수단으로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비전인지에 대한 고민도 제쳐둘 수는 없다.

저숙련 인력들은 저임금 일자리만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가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정책 이외에 저임금 일자리 개선과 구조조정의 장기적 비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모두 급한 것은 맞다. 저임금 노동자나 자영업자, 소상공인 모두 어려운 것도 맞다. 그러나 2017년 최저임금 20.6% 인상을 추진한 캐나다 온타리오주 민주당이 2018년 6월 선거에서 패배했다.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여야 합의의 정치가 부재하고 노사 간 신뢰가 약한 사회에서 장기 시야와 정책 방향을 가지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장기적 전망을 가지기 위한 사회적 신뢰와 대화, 타협은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우리 경제, 산업, 노동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키를 쥔 정책 수단이다. 취약계층 고용 감소와 같은 부정적 효과는 단기적으로 나타나지만, 내수 확대, 일자리의 질과 생산성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복지지출 절약 등과 같은 긍정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의 장기적인 로드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다양한 정책 조합을 고려하고, 이해당사자들의 타협을 유도하면서 단기적으로 과잉정치화된 최저임금 인상 논의를 좀 더 장기적인 시야에서 사회적 합의와 타협으로 이끌어내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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