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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년을 맞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와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충격과 슬픔, 고통은 여전하다. 역대 국내 재난사건 희생자 수로 볼 때, 삼풍백화점 붕괴(1996년, 502명 사망), 여객선 남영호 침몰(1970년, 323명 사망) 등에 이어 4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초대형 재난에 대응하고 극복하는 과정과 수준이 지극히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트라우마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으로 진단한다. PTSD의 영향력은 사건을 직접 경험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 가족과 친구, 관련 응급 서비스직과 자원봉사자, 취재기자, 그리고 TV 등을 통해 사건을 접한 사람들까지 확장된다. 이를 감안할 때 세월호 참사 과정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이 트라우마 혹은 PTSD 증상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으로는 우울증,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광장공포증, 알코올중독 등 PTSD와 공존하는 질환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대중 사이에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 결과적으로 국가 및 사회적 집단위기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할 만큼 세월호 사건이 유난히 장기간 한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뜨린 배경은 뭘까. 필자는 한국 문화의 집단주의를 일컫는 ‘우리성(WE-NES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오랜 세월 한국민의 정서에 지배적 영향을 끼쳐온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정적으로 공유하면서 비롯된 현상인 것이다. 즉,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 국민적 트라우마 증상은 단원고 학생들로 이루어진 피해자들이 ‘내 자식’이라는 감정이입에서 비롯된 셈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서 아들의 사진에 입을 맞추고 있다. _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후 필자는 단원고 재학생, 유가족, 그리고 재난 수습에 투입됐던 소방구급대원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및 PTSD 극복을 위한 미술치료를 통한 심리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회복 후의 성장, 즉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날로 심각해지는 각종 재난 대응 문제를 두고 그저 개인과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현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재난으로부터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앙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자연재해·테러·폭행 등 모든 종류의 트라우마를 다루면서 연구·교육·치료를 위한 통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미국 국립PTSD센터, 모든 국민에게 포괄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의료 시스템에 기반을 둔 영국 PTSD센터, 상담·진료·정보 보급 등을 체계화한 일본 효고현 트라우마센터 등 소위 선진국들의 선례를 마냥 부러워만 할 때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우리 정부도 국립트라우마센터 건립과 재난 발생 시 전문 심리지원팀의 조기개입 등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상시적 교육 체계를 통해 언제든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과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차별화되고 근거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김선현 | 차의과대 미술치료대학원장·(사)대한트라우마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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